SK그룹 총수형제 "1심 진술 거짓말..죄송하다"

"펀드조성하고 선지급한 것 관여..인출은 안했다" 항소심서 진술 번복

입력 : 2013-04-08 오후 6:32:37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최태원 SK(003600) 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 펀드 투자금 선지급 출자 과정에 관여했다'며 1심에서의 주장을 뒤집었다.
 
다만 '펀드 송금'이나 '인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 최 회장 측의 설명이다.
 
변호인은 이 돈을 인출한 인물이 최 회장이 아닌 제3자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앞선 1심 재판과정 내내 최 회장은 '계열사를 동원해 펀드를 조성하고, 선지급한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런데 8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최 회장 측은 갑자기 '거짓 진술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최태원 "펀드 투자금 선지급 관여 인정..송금 지시·인출은 전혀 몰라"
 
최 회장 측 변호인은 "펀드 조성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펀드 자금을 인출해 사용한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거짓 진술을 한 것에 대한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사과한다. 펀드 선지급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횡령하기 위해 인출한 바 없으며, 인출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해외에 체류 중인 김원홍씨가 이번 횡령 사건으로 인해 실질인 이득을 본 인물일 수 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돈을 인출한 주체를 공소사실에 적힌 최 회장 혹은 최재원 부회장으로 한정해 생각하지 말아야한다는 게 변호인의 설명이다.
 
변호인은 "재산 범죄의 동기는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게 목적이다. 450억을 최 회장이 횡령했다면, 불과 1~2개월 사용한 3억원 상당의 이자만큼의 이익을 가졌을 뿐이다. 이 같은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기업운영에 큰 타격을 줄 위험 부담을 안고도, 국내 3위 안에 꼽히는 대기업 회장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며 최 회장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최 회장은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 직접 법정에서 심경을 밝혔다.
 
최 회장은 "1심 판결이 나온 이후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일이 제가 지휘하는 조직 안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그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심 재판과정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점 사과 드리고, 그 행동이 잘못된 점이라는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실체적인 진실이라 생각하는 건, 펀드 자금이 유출된 일에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펀드자금 유출이 일어난 일조차 몰랐다. 앞으론 진실된 재판을 위해 성심 성의껏 임하겠다"고 말했다.
 
◇ 최재원 "나의 방어막이 최 회장에게 치명적인 독"
 
최재원 부회장 측은 1심에서의 거짓 진술을 인정하며 최 회장 측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최 부회장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1심 재판에서 거짓 진술을 한 점은 송구스럽다"며 "피고인은 원심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 무죄 판단을 받은 피고인은 참담함 심정이었다. 피고인이 어쩔 수 없이 시도했던 방어막이 최 회장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해 원심의 왜곡된 추론으로 나아갔다. 그 거짓 진술을 제외한다면 실제척 진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450억원을 짧게는 30일 길게는 53일 정도 일시적으로 쓰고 상환한 정도면 법적으로 책임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다"며 "사법방해적 행위를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점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 그동안 최 부회장은 '펀드 출자와 인출을 모두 자신이 주도했을 뿐, 형인 최 회장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취해왔었다.
 
◇검찰 "'진술 변경'에 허탈한 심정.엄정한 판단 해달라"
 
이 같은 최 회장 측의 입장 변화에 대해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항소심에서 들고 나온 전략은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가 김원홍의 영향력에 의해 국내 3위 그룹의 총수인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을 속여, SK그룹이 사활을 걸고 출자한 펀드 자금을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게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김원홍씨가 개인적으로 돈을 유용한 사실이 사후적으로 드러났다면, 최 회장 측은 김씨를 상대로 형사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내거나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최 회장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피고인들이 1심 재판에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결백하다고 주장했던 진술을 항소심에 이르러 특별한 사정 없이 '거짓말 이었다'고 태도를 변경한데 대해, 참으로 허탈한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며 이들의 진술 변경에 대해 재판부가 엄정한 판단을 해달라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은 2008년 10월 말 SK텔레콤, SK C&C 등 2개 계열사에서 선지급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IB)을 과다 지급해 돌려받는 방식으로 2005~2010년 비자금 139억5000만원을 조성해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포함됐다.
 
최 부회장은 이 자금을 선물옵션 투자를 위해 김준홍 베넥스 대표를 통해 국외 체류 중인 김원홍씨에게 송금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반면, "최 회장은 전혀 몰랐고, 내가 베넥스 펀드 자금 송금에 관여했다"고 주장해온 최 부회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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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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