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 STX '판박이'..산은 책임론 제기

입력 : 2015-01-19 오후 3:01:49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새 주인을 맞은 동부제철이 빠른 속도로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움직임이 확대되면서부터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동부제철이 지난 2013년 STX그룹 구조조정 때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부실의 책임을 물어 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고 서둘러 새 경영진을 선임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STX그룹 사태와 판박이라는 분석이다.
 
또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늑장 대응이 부실 규모를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채권단, 동부제철 경영권 확보..동부 색깔지우기 본격화
 
동부제철은 지난 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에 대해 100대 1 무상감자안을 의결했다. 내달 9일 무상감자가 완료되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1% 미만으로 떨어져 소액주주로 전락하게 된다.
 
반면 채권단은 53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통해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 동부제철의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동부제철이 동부그룹 품에서 벗어나 채권단 소유의 회사로 주인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앞서 동부그룹은 지난 2013년 12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체결한 '사전적 구조조정 약정'에 따라 자구계획안을 수립했다. 동부그룹은 자구계획안에 따라 동부특수강과 동부익스프레스, 동부발전당진, 동부팜가야, 동부택배를 매각하고, 동부하이텍과 동부로봇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동부그룹과 동부LED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때 재계 서열 18위였던 동부그룹은 주력 사업으로 육성했던 반도체, 철강, 건설 계열사를 잃고 금융그룹으로 몸집이 현격히 줄게 됐다.
 
특히 동부제철의 경우 지난해 초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한 데 묶어 패키지로 매각하는 안이 한 차례 무산되고 매각이 연기되면서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동부발전당진은 당초 시장 예상가보다 더 싼 값에 매각됐고, 인천공장은 골칫거리로 남게 됐다. 이는 유동성 공급 지연으로 동부제철이 자율협약을 체결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자율협약 체결 이후 동부제철에서 김준기 회장을 끌어내리고 김창수 사장을 신임대표로 선임하는 등 경영진을 교체했다. 지난달에는 열연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인력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채권단은 열연설비 매각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달 17일에는 서울 중구 STX남산타워로 사옥도 이전한다.
 
채권단 소유의 회사로 넘어간 이상 당연한 수순이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패키지 딜이 무산된 이후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던 구조조정과 달리 적극적이고 빠른 속도로 동부제철을 접수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와 업황 부진으로 관리해야 할 부실기업이 늘면서 재무적 부담이 커진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지원보다는 자금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동부제철 사옥 이전도 같은 맥락이다. 강남 지역에서 비싼 임대료를 내는 것보다 산업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STX남산타워로 이전하는 게 비용절감 측면에서 더 유리하고 산업은행의 자금 회수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달 초 동부건설의 법정관리 이후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산업은행의 부실한 대응에 대한 비판도 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쳐 자산 매각 효과가 적었다는 주장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해 적시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미 주요 자산들이 담보대출에 걸려 있어 자산을 매각해도 정작 동부그룹에 유입되는 비용은 적을 수밖에 없다. 동부택배의 경우 동부건설이 지분 100%를 매각한 뒤 건진 돈은 45억원에 불과했다.
 
◇동부제철 당진제철소의 전기로(사진=동부제철)
 
◇2년 전 STX그룹 사태와 닮은 꼴..채권단 자금 회수에 급급하다는 지적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지난 2013년 STX그룹 사태와 너무도 닮아 있다. STX그룹의 경우 강덕수 전 회장의 분식회계와 배임 등이 추가돼 그룹이 해체되고 총수가 구속되는 일까지 이어졌지만 기본적인 구조조정의 틀은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STX그룹의 경우 STX조선해양과 STX중공업, STX엔진 등 주요 계열사들이 무상감자와 출자전환을 거쳐 채권단 소유로 넘어갔고, STX팬오션과 STX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STX에너지는 일본계 금융회사인 오릭스를 거쳐 GS·LG그룹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100대 1 무상감자를 통해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이 교체됐고, 사업 및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한편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자유경제원에서 열린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 실패의 교훈' 정책토론회에서는 최근 동부와 STX그룹 구조조정 실패에 대한 책임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최근 STX, STX 조선해양, STX중공업 등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기초한 구조조정에서 회사 구성원들의 요구에도 채권단이 경영권을 교체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부실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책임이 경영권 포기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패자 부활의 기회 제공이라는 기업 구조조정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부그룹 사례를 들며 “당초에 산업은행이 그렸던 구조조정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드러난 상황만을 놓고 평가하자면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민영금융기관의 행태와 차별화되는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포스코와의 패키지 딜 등은 설령 산업은행이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민영금융기관이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며, 경영진 교체를 단행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방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채권단이 기존 경영진에 비해 더 유능하다는 것이 전제될 때 성립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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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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