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중국의 '축구 굴기' 역으로 본다면

입력 : 2015-12-09 오후 1:31:46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중국발 '축구 굴기'가 올겨울에도 불어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K리그 이적 시장만 열리면 벌어지는 현상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겨울엔 중국 동북부 끝자락에 있는 '연변FC'마저 가세했다. 조선족 자치주 팀이라는 연변FC의 특성과 박태하 감독 영입 효과가 비빔밥처럼 비벼져 더 많은 한국 축구인을 한데 버무리려 한다.
 
그들에게 박태하 감독은 징검다리다. 박 감독은 지난해 12월 연변FC를 맡아 1년도 안 돼 팀을 1부 리그로 끌어올렸다. 마치 축구가 경계인 '조선족'으로서 억눌렸던 감정의 분출구로 기능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그들에겐 아시아에서 검증된 축구 강국 한국의 능력이 필요하다. 연변FC에서 발화한 국내 축구인들의 '이적 러시'는 그래서 생소하면서도 당연해 보인다.
 
이미 김승대(포항)와 윤빛가람(제주)이라는 젊고 유망한 국가대표급 선수의 연변FC 이적이 확정적이다. 이임생 코치와 김성수 골키퍼 코치도 연변FC에 합류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8일에는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이 내년 1월부터 충칭 리판의 지휘봉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이달 초에는 김상호 전 19세 이하(U-19) 축구대표팀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 2부 리그 상하이 선신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도자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홍명보 감독의 거취도 중국행으로 점쳐지고 있다. 중국은 진공청소기처럼 K리그를 비롯한 국내 축구를 빨아들이고 있다.
 
◇연변FC의 중국 슈퍼리그(1부리그) 승격을 이끈 박태하 감독. 사진/연변FC 홈페이지
 
"중국, 또 중국"…500억 운운하는 중국의 거대 투자
 
"자고 일어납니다. 씻기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죠. 그리곤 축구 소식을 접하는데 어제도 중국, 오늘도 중국, 온통 중국입니다. 내일도 중국이겠죠."
 
한 축구팬은 요즘 자신의 일과를 이렇게 전했다. 그에게 중국은 K리그 옆에 붙어 있는 꼬리표와 같다.
 
"왜 중국이 한국 선수를 많이 탐내느냐 이런 물음은 사실 예전에나 많이 받던 질문입니다. 요즘은 그냥 또 누가 다음 타자냐는 소리를 많이 듣죠. 일종의 당연시 되는 분위기도 있어요."
 
중국 축구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요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왜 중국이 한국 축구인을 많이 노리느냐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이제는 그런 단계를 넘어선 셈이다.
 
이들의 말처럼 '중국행'은 한두 해 반짝 겪은 게 아니다. 이제는 축구계와 팬들 모두 중국이 저렇게 돈을 퍼붓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느냐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K리그 '큰손'으로 분류되는 전북현대의 예산은 중국 어지간한 구단과 비교도 되지 않다. 박태하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연변FC의 500억 예산설'은 사실 여부의 검증을 떠나 논의되는 액수 자체가 다른 세상임을 드러낸다.
 
사안을 밖에서 보면 이미 중국 축구의 투자는 우리가 어떠한 대책을 세우거나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그들은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단에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투입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비단 한국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공 좀 찬다고 하는 선수들이 조금만 한눈을 판다면 언제든 총 쏘듯이 현금을 그들의 계좌로 쏘려 장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내건 게 뭐야? 축구 굴기잖아. 그 아래서 기업들은 주석에게 잘 보이려 있는 힘껏 축구 산업을 키우려 하는 거지. 돈도 많은데 퍼붓겠다고 작정하는 걸 무슨 수로 우리가 막느냐고."
 
중국에서 오래 유학한 지인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좀 더 알아보고자 중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말을 들어봐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는다.
 
중국이 축구에 돈을 퍼붓고 뭐라도 해보겠다고 달려든 이상 그 흐름은 이미 거꾸로 오를 수 없는 하나의 폭포수가 됐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까? 다른 나라의 모습을 봤을 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연변FC 이적을 앞둔 포항스틸러스의 김승대. 사진/프로축구연맹
 
외국 선수 의존증…과도기 예상되는 '위에서의 성장'
 
지금과 같은 중국 축구의 양적 팽창은 언젠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외국 선수에 크게 의존하며 일단은 판을 키워놓고 보자는 취지를 펼치고 있다. 한 중국 축구 에이전트는 이런 흐름에 대해 "주로 중앙 수비수, 중앙 미드필더, 최전방 공격수 같은 중앙 라인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단 잘하는 선수들을 데려와 판을 키우고 배워 궁극적으로 중국 대표팀의 경기력까지 높이겠다는 기조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 축구대표팀은 기대와 달리 최근 홍콩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졸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고액 연봉자인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여전히 자국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한 대표팀의 경기력엔 의문부호가 따르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한국과 일본이 예선을 거치지 않고 참가한 2002 월드컵이 중국의 유일한 월드컵 출전이었으며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역시 중국은 예선 탈락했다.
 
지금과 같은 '위에서의 성장'은 중국 축구의 과도기를 몰고 올 전망이다. 중국 축구가 내건 '대표팀 경기력 향상'이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아래에서부터 뚫고 올라가야 할 천장이 있다. 그게 바로 지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겪고 있는 고민이다.
 
지금처럼 중국 축구가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다 보면 언젠가 자국 선수를 보호하고 키워야 한다는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EPL을 운영하는 잉글랜드가 그렇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그들 축구대표팀의 국제무대 부진 중 하나로 외국인 선수 비율이 높은 것을 꼽는다. 뛰어나다는 외국인 선수들을 끌어모아 한바탕 지구촌 잔치를 펼치고 있지만 정작 자국 유소년 선수들이 뛰며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이제 막 경험을 쌓아야 할 젊은 선수들은 되레 다른 나라 리그나 하부리그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그들 주장이다.
 
데이터를 찾아보기 위해 축구 이적시장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의 통계를 살펴보자면 EPL의 외국인 선수 비율은 68.3%에 달한다. 이는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는 키프로스의 퍼스트디비전 리그(57.2%)보다 11.1% 높은 비율이다. 세계 5대 리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세리에A가 뒤를 이어 56.3%다. EPL을 향한 잉글랜드 일부 팬들의 비판이 허황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선을 중국으로 돌리면 그들은 한·중·일 3국 중 가장 높은 17.8%의 외국인 선수 비율(479명 중 85명)을 나타냈다. K리그(9.1%)와 일본 J리그(12.6%)보다 크게 높은 비율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외국인 선수가 받는 연봉과 모든 플레이가 그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꼬집어보자면 이는 수치로 잡히지 않는 것들이다.
 
◇중국 슈퍼리그의 선수 가치 1~25위는 전부 고액 연봉의 외국인 선수가 올라있다. 사진/ 축구 통계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 캡쳐
 
'문화산업' 관점에서 역사와 전통 위한 유소년 육성해야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 축구의 광풍 속에서 K리그의 집중력은 어떤 모양새를 취해야 할까. 결국 K리그가 살 길은 이미 빗장을 닫을 수 없는 흐름을 인정하고 유소년에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끊임없이 인재를 길러내 아시아에서만큼은 브라질 못지않은 축구 선수의 산실이자 요람으로 거듭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형이라는 거다. 리그가 강하다고 해서 그게 곧 그 나라 축구가 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요즘의 흐름이다.
 
세계무대에서의 브라질을 보면 그렇다.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와 브라질축구협회(CBF)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1∼7월에 외국 무대로 진출한 브라질 축구선수는 455명과 355명이다. 포르투갈(412명), 독일(136명), 이탈리아(127명), 일본(90명), 스위스 (86명), 미국(76명), 스페인(60명), 오스트리아(53명), 몰타(49명), 터키(46명), 중국(46명) 등이다.
 
이밖에 타지키스탄과 브루나이, 에티오피아, 에스토니아, 수단, 베트남 등에도 브라질 선수들이 뛰고 있다. 이렇게 자국 리그 운영과 함께 외국 리그로 나가는 선수가 많지만 그 누구도 브라질 축구 리그와 실력을 깎아내리지 못한다. 세계가 비슷한 규정을 갖고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움직이는 축구에서 결국 본질은 선수인 셈이다.
 
축구를 하나의 문화 산업으로 봐도 K리그 선수들의 중국 이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수한 선수가 투자 폭이 넓어지는 리그에서 뛴다는 건 더 뛰어난 선수들과 부딪힐 기회를 많이 잡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국내 축구인들이 중국 축구 문화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전파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도 따져볼 수 있다.
 
차라리 중국 리그가 더욱 커져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더 많이 유입되길 바라는 게 괜찮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K리그는 꾸준히 스토리를 만들고 선수를 육성해내는 게 현명한 차선책이다.
 
급하게 몰아치는 투자란 언젠간 끝이 오기 마련이다. 자칫 거품처럼 보글거리며 하루아침에 가라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탄탄한 내실에서 뻗어 나가는 내공은 밑거름만 잘 주면 지속된다. 역사와 전통이란 말은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며 한국 축구의 두 눈은 그쪽을 봐야 한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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