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과주의 신화 깨기

입력 : 2016-09-20 오전 10:51:13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파업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뒤덮는다. 9월23일 금융총파업에 이어 철도·지하철, 건강보험·국민연금, 가스공사 등 공공기관 노조들의 파업이 27일부터 시작된다. 임금 및 근로조건이 그래도 좋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뭘까. 또 임금 인상인가 아니면 노동시간 단축인가. 두 가지 다 아니다. 정부가 단체교섭에 응한다면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정부가 노동조합과 성실한 교섭에 나서고, 일방적 정책 추진을 중단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파업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올 상반기 내내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뇌관이었던 성과연봉제 및 퇴출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정부 태도가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단호하게 말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각 기관별로 결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까지 만들고 지침을 전달하였지만, 노동조합과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부정하듯 매몰차게 몰아붙인다. 금융과 공공부문 파업은 국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나라를 혼란시키는 행위라 말한다.
 
갈등 해소를 위한 노정 협상이 시급하지만, 물밑 대화 창구마저 꽉 막힌 상태이다. 파업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서도 공공부문의 진짜 주인인 국민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임금체계를 왜 성과연봉제로 바꾸려 하는가. 성과연봉제를 하위직까지 확대 도입하면 조직의 경쟁력과 서비스의 질은 향상되는가.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동자의 퇴출제이며, 공공서비스 질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공공부문 노정 갈등의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성과연봉제 도입 효과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호봉제 임금체계는 생산성 및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매년 임금이 상승하는 제도로 내부 경쟁이 미흡한 철밥통의 핵심 원인이라 비판한다.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가능한 성과연봉제 도입이 경쟁력 향상의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성과연봉제 도입이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성과연봉제는 성과에 따라 보수를 결정한다는 인식 때문에 합리적인 임금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과평가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고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다. 특히 공공부문에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공공부문이 갖는 민간과의 차별성이다. 공공부문은 성과연봉제의 전제인 ‘성과’라는 것을 무엇으로 할지 알기 어렵고,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수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과연 그 조직의 목표인가라는 점에서 궁극적 목표와의 괴리가 발생한다. 또한 공공부문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형평성, 공정성, 책임성 등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 공공부문 조직의 성과가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인 단위로 분할하기 어렵다는 점이 제기된다.
 
둘째, 임금체계 변경을 둘러싼 불법 논란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법을 위반하여 시행된다면 정책의 타당성 및 수용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반대를 이유로 노조의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한 기관이 무려 57곳이나 된다. 그런데 성과연봉제의 도입은 근로기준법 제17조가 규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에 해당하므로, 노조의 동의 없는 제도 시행은 불법이며 원천무효이다.
 
셋째, 경쟁력 및 서비스 질 약화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성과연봉제 도입은 목표와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별 성과를 높여 조직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표와는 거꾸로 구성원 간 협력은 약화되고 단기 실적주의가 팽배해졌다. 1980년대 중반 영국 고용부 직원들은 구직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구해주었는지에 따라 성과평가를 받았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직원들이 개인 성과로 보고한 구직자 통계가 실제 고용통계보다 3분의 1 이상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으며, 좋은 일자리보다는 목표 채우기에 급급했다. 성과주의로 저금리 시대에도 고수익을 달성해 국내 금융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미국 대형은행 웰스파고는 최근 고객 명의를 도용한 불법 가짜 계좌 개설로 1억8500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성과주의의 대표적 피해 사례이다.
 
정부는 성과주의의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은 군사작전 하듯 몇 개월에 해치울 일이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임금체계 개편은 당사자의 동의가 핵심이다. 정부가 할 일은 지긋지긋한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부터 척결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을 이렇게 해서는 말짱 도루묵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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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