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엄동설한이 아닌 장미꽃 만개한 계절에 선거를 치르는 게 무척 생소하고 이채롭다. 여야 간의 첨예한 대결이 아니라 야권끼리 대권을 다투고 있는 양상도 전례 없는 일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다시 목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두 후보는 한때 같은 정당에서 한 솥밥을 먹던 사이다. 따라서 이들 간에는 주요 정책이나 지향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교육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현실 인식을 전제로 차기 정부 교육정책의 성공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남기고자 한다.
첫째, 차기 정부에서 확실하게 손볼 부처 영순위에 올라 있는 교육부의 존폐에 대해선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교육기구 개편의 배경이 된 교육부의 과거 문제점에 대해선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육기구 개편을 외치고 있는 것이 결코 무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차제에 교육부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교육정책 독과점에 기인한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기구 개편을 도모하는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교육부를 완전히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합의제 행정기구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해집단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육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원만하게 이루어내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에 이전보다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먼저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차기 정부의 교육부는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가’와 ‘어떤 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간 교육부는 이런 비전과 철학이 부재하거나 불분명한 상태에서 교육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다 보니 교육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따라서 새 정부는 한국 교육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핵심적 과제를 엄선하고 시대정신을 적절히 반영하여 교육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절박한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색깔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전임 정부에서 폐기됐던 정책은 우선적으로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라 부와 신분의 세습을 위한 핵심 기제로 기능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역동성과 활력은 사라지고 사회통합도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창의력, 공감능력, 협업능력 등을 키워주기 위해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차기 정부의 교육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다른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제를 면밀하게 구분하여 좀 더 실효성 있고 타당한 교육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교육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과의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배태되어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 따라서 교육문제 가운데 사교육비 경감과 같은 난제는 교육부 혼자서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개 이런 문제에는 사회 전반의 기회구조에 대한 학부모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열 사교육 경쟁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교육 내실화만으로는 역부족인 바, 지금보다 훨씬 더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복지가 강화된 사회가 구현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간 교육부는 과중한 사교육비 지출이 사회적 현안으로 불거질 때마다 마치 숨겨둔 비책이라도 되는 양 간단없이 사교육 대책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효과는 영 신통치 않았고, 때로는 심각한 역효과가 나타나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도만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차기 정부의 교육부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맥을 제대로 짚고 다소 더디더라도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펼쳐주길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타 부처의 폭넓은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함이 있어선 안 된다.
넷째,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해집단 간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 도출에 배전의 관심과 노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간 교육부가 시행한 교육정책 중에서 이해집단 간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치러야 했던 경우는 대개 이 같은 민주적 의견 수렴과 합의 도출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대다수 역사학자는 물론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했음에도 무리하게 추진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기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 합의 도출만 담보된다면 교육정책을 누가 수립하고 시행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만일 광범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치열하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가령 국민 10명 중 7명 정도는 찬성하는 상태에서 교육정책이 시행된다면 그 정책은 안정성이나 지속성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40년 넘게 한국을 대표하는 교육정책으로 남아 있는 고교평준화정책이 여전히 국민 10명 중 7명 정도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임 정부의 교육정책이라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고 타당한 것은 확실하게 계승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전임 정부와 차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경쟁적으로 전개됐던 것이 우리의 관행이었다. 이 때문에 부처별로 정책의 단절이 광범하게 발생했고, 정책의 계승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어떻게든 포장이라도 바꿔 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부작용이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백년지대계라 할 만한 교육정책이 설자리는 없게 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전임 정부의 교육정책 가운데 자유학기제와 같이 이념 편향과 무관한 것들은 온전히 이어받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포용성과 합리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를 2018년부터 국·검정 혼용 체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작년 12월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가 국정교과서 강행 즉각 중단과 교육부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