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기업가치 1조 유니콘기업 발굴에 정책 초점

12조 규모 스케일업 전용펀드 조성…VC 스케일업 위한 BDC 도입 등 주목
창업주 정신·경영권 보장 위한 '차등의결권' 도입 검토도 전향적

입력 : 2019-03-06 오후 3:58:47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정부가 6일 제2벤처붐 확산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1차 벤처붐(1998~2001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대책은 벤처·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스타트업-스케일업-글로벌화-벤처 투자·회수 시장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구축·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스케일업을 위한 방안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이다. 스케일업은 이미 창업한 기존 초기 기업이 매출 또는 고용에서 3년간 연평균 20%이상 증가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향후 4년간(2019~2022)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전용펀드를 조성·운용한다. 스케일업 전용펀드는 기존 정부가 조성한 5조원에서 7조원 순증하며, 모태펀드와 민간펀드로 설치 운용될 예정이다. 12조원은 정부 재정 20%, 나머지는 민간 펀드로 채워진다. 스케일업 펀드로 1000억원대 대형 펀드 조성이 가능해져 한 기업에 수백억원의 집중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가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실제 중기부에 따르면 고성장기업의 2012년 대비 2015년 매출규모별 고용증가율을 보면 10억원 미만 13.3%, 10억~100억원‘ 43.4%, 100억~200억원 54.0%, 200억원 이상 58.7% 등 스케일업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 또한 이날 서울 디캠프에서 진행된 '제2벤처붐 확산 전략' 발표에서 벤처기업이 스케일업을 통해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케일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스케일업 의지는 창업 초기기업에 지원 정책이 쏠려 있다는 벤처업계의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정책은 창업초기 단계 지원에 쏠린 반면 기술력과 잠재력을 지닌 기업에 대한 스케일업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년 벤처캐피탈(VC)의 기업당 평균투자금액은 25억원인데, 50억원 이상의 투자건수는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국내에는 수천억원의 투자를 할 수 있는 VC가 전무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해외서 3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유니콘기업 '우아한형제들'의 사례를 국내 벤처생태계에서 만들겠다는 게 정부가 밝힌 스케일업에 대한 의지다.
 
정부는 스케일업 전용펀드 이외에 스타트업 해외진출 확대 등 스케일업 지원도 대폭 강화한다. 스케일업 지원을 위한 실리콘밸리은행 기능을 도입한다. 신뢰도 높은 벤처투자자(VC)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대해 대출을 연계해 지원하는 개념이다. 우선 창업·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대한 축적된 경험과 정보를 보유한 기업은행에 적용해 추진한다. VC·스타트업 업계와 투자·대출정보 공유를 위한 협업채널을 마련하고, 긴밀한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위한 후속 투자·대출자금을 기업은행이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성장단계에 있는 기업에 대한 기업공개 지원도 확대된다. 업력 3~7년 창업기업에 대해 자본시장 상장지원 프로그램의 기업당 지원한도를 현행 3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으로 확대한다.
 
투자 관련 정책을 더 뜯어보면 이 역시 스케일업과 맞닿아 있다. 정부는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 도입 △사모재간접 공모펀드의 벤처투자 활성화 △엔젤 세컨더리 전용펀드 2000억원 신규조성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밝힌 유니콘기업 20개 창출 목표 또한 VC의 투자가 뒷받침돼야 가능한데, 벤처캐피탈의 독자적 BDC 운용을 허용해 기업당 수천억원의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사모재간접 공모펀드의 경우 다수 일반 투자자를 1명의 출자자로 간주해 벤처펀드 출자가 가능하다. 특히 이 제도는 1인당 100만원가량의 소액으로도 벤처펀드 투자 결성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으며, 벤처투자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차등의결권 도입 검토 또한 눈에 띄는 내용이다. 정부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입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주주들이 동의하고, 상속·증여가 불가능한 창업주 일신전속성을 전제로 하는 등 엄격한 요건 하에 추진한다.
 
벤처업계는 그동안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창업 이후 성장까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스타트업의 경우 차등의결권이 상법상 금지된 탓에 경영권 방어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투자를 받을수록 경영권이 위축되고 스케일업에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게 창업주들 주장이다. 벤처기업계는 1주당 의결권 2개 이상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이 창업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혁신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꼽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이 홍콩, 상하이를 뿌리치고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 또한 차등의결권이 보장된 덕분이다. 마윈은 실제 보유지분 7%가량으로 40%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을 보면 차등의결권 이외에 포이즌 필(poison pill), 황금주 등을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도입하고 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해 기존 주주에게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제도다. 황금주는 경영 현안에 대한 거부권을 의미한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 페이스북 등을 보면 일반주를 계속 팔아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의결권 있는 황금주 덕분이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국회에는 비상장 벤처기업의 모든 주주의 동의가 있을 경우 1주당 2~10개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벤처기업법 일부개정안(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 등 10인 발의)이 소관위원회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최운열 의원 측은 "벤처기업의 경우 창업자의 철학과 노하우가 기업발전에 필수적이나 대주주의 경영권이 취약해 창업정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경영권 불안정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 부채 위주의 자금조달 유인을 낮추고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중기부 관계자는 "차등의결권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대통령의 스타트업 스케일업 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국회에서도 논의가 깊이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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