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귀촌 고민하다 차린 와인바 "인생 이모작, 맞들면 낫다"

'나 홀로 창업' 힘든 시대…"협동조합식 창업 고민해보세요"

입력 : 2019-12-17 오후 6:24:5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솜 같던 첫 눈으로 시작된 영하의 날씨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따스한 크리스마스 기운이 벌써부터 충만해져서일까.
 
‘온화한 겨울’을 더 분위기 있고 우아하게 즐기려면 와인 잔을 기울여 봐도 좋을 것이다. 굳이 값비싼 최고급 와인까지 갈 필요도 없다. 긴 연필 모양 이탈리아 빵과 치즈, 하몽 플래터 몇 조각, 글라스 한 잔 정도로도 충분하다. 요즘 거리 곳곳에는 따끈한 감성의 와인을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선택지들도 늘고 있다.
 
뉴욕 센트럴 파크를 빌려온 이름으로 젊음의 상징어가 된 곳. 과거 폐철도 부지를 ‘힙하게(멋지게)’ 가꾼 연트럴 파크 인근에 최근 이런 흐름을 타고 조금 특별한 와인바 하나가 들어섰다. 프랑스, 칠레, 스페인, 이탈리아산 와인을 착한 가격에 제공하는 ‘와이니 하이(Wineyhigh)’다. 단순히 가성비 좋은 다품종 와인을 공급한다고 해서 이곳이 특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장년층이 협동조합식으로 창업 돌파구를 찾은 가게 '와이니하이'. 사진/뉴스토마토
 
이곳을 창업한 이들은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한 중장년층 8명. ‘나 홀로 창업’이 힘든 시대에 이들은 협동조합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지난 13일 저녁 독특한 비즈니스 발상으로 와인바를 차린 이곳의 조합원 오창환 매니저(59)를 만났다. 그는 “귀촌까지 고민하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합심해 와인바를 차렸다”며 “이 늦은 나이에 인생 이모작을 위한 생태계를 도시에서 만들 수 있어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혼자서 해본 적도 없는 창업에 바로 뛰어든다는 건 모험이죠. 고민하던 차에 조합식으로 해보자 하는 의견을 동료들과 공유했어요.”
 
협동조합식으로 창업 돌파구를 찾은 오창환 와이니하이 매니저. 사진/뉴스토마토
 
이들은 형편에 따라 인당 200만원에서 1100만원까지 출자했다. 총 자본금 5000만원으로 12월초 연트럴파크 중심가 건물 4층에 둥지를 틀었다. 청춘들 발걸음이 물밀 듯 오가는 곳에 ‘착한 가격’의 와인 리스트를 늘어뜨렸다. 글라스 한 잔으로 충분한 분위기는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에까지 닿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여파가 거세지만 역설적으로 권리금 부담이 줄어들어든 효과가 있어 창업하는 데 부담을 덜었다. 
 
“1~2년 전이었다면 연남동은 접근조차 불가능했을 거예요. 권리금만 적게는 6000만~7000만원에서 1억까지 됐으니까요. 조합식으로 맞들면 서로 돈 부담을 나눌 수 있어 리스크가 적은 장점이 있죠.” 
 
조합은 비용을 공제하고 우선적으로 조합원 출자금을 회수한다. 원금 회수가 이뤄진 뒤 추가수익에 대해서는 운영자, 조합원, 사내유보 순서로 배분한다. 최근 청년 창업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 창업 방식이 중장년층의 인생 이모작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는 셈이다. 
 
협동조합식으로 창업 돌파구를 찾은 오창환 와이니하이 매니저. 사진/뉴스토마토
 
오창환 매니저는 젊은 시절 영화계와 건설업계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고 그림을 취미로 그렸다. 자신의 못다 이룬 꿈, 미적 감각을 이 공간 곳곳에 즐겁게 새기고 있다. 계단을 걸어 와인바에 들어서면 노란 빛을 발열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겨준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관한 단상을 적은 노란 종이와 골프드라이버를 잘라 만든 개업 선물도 곳곳에 배치됐다. 여름에는 세계 각지 와인 병들을 늘어뜨린 루프트탑으로 젊은 고객층에 소구할 계획이다.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인생의 선택지가 좁아져요. 현직에 있는 사람들도 마지막 불꽃을 태울 시기죠.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많이 남는 우리 세대들에게 협동조합 형태로 길을 찾아가는 방법도 괜찮다 말해주고 싶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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