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원피스와 면티셔츠

입력 : 2020-08-07 오전 6:00:00
 정치권에서 때 아닌 '원피스' 논란이 뜨겁다. 사건의 발단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출석한 데서 비롯됐다. 이른바 국회의원 복장으로 적절하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다분히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발언이다. 특히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국회의원들의 전형적인 '꼰대적' 시각이 또 다시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꼭 17년전 당시 국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유시민 전 의원의 '빽바지' 사건과 같다.  
 
지금은 2020년이다. 그럼에도 복장이 이렇게 정치권에서 화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언론에 종사하는 이로서 자괴감까지 든다. 정치부와 사회부, 경제부 등을 두루 취재하며 그래도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느낌마저 든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옷차림새 이야기는 그런 것이어선 안된다. 며칠전 재난방송을 보면서 수해로 집을 잃은 한 이재민의 낡은 면 티셔츠가 생각난다. 불과 몇 분 만에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듯 인터뷰하는 그는 한쪽 소매가 뜯어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사의 길목에서 몸만 빠져나오다 보니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민의의 전당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민생을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여성의원의 옷차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록적인 장마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인 이재민들의 옷차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본분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역대 최장 장마기록을 갈아치울 듯 하다. 그만큼 물적·인적 피해는 늘 수 밖에 없다. 집중호우가 그치지 않는 이상 복구는 엄두도 못내는 것이 피해 현장의 현실이다. 삶의 터전과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당장 넥타이와 정장을 벗어던지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지역구에 가서 이재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재민들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괜히 현장을 찾는답시고 가서 잘 하지도 못하는 삽질을 하거나, 물건을 나르며 땀흘리는 모습을 연출할 것이라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낫다.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장에 넥타이 매고 정장을 차려 입고 앉아서 고함만 치다 재난이 발생했다고 카메라를 대동해 현장에서 어설픈 포즈를 취하는 정치인은 이제 신물이 난다. 분홍생 원피스가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라 기록적 폭우에 따른 홍수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입은 옷차림이 마음에 걸려서 밤잠을 설쳐야 하는 게 정치인이다.
 
7월 임시국회는 끝이 났고 조만간 9월 정기국회가 열린다. 그 와중에 최근 법안 처리 방식과 절차를 놓고 여야의 입씨름은 갈수록 거센 표현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장 가족을 잃어버렸거나 삶의 터전이 사라진 암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입씨름 하는 정치인들은 가히 혐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국가적 재난이다. 정치 현안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비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도울 방법을 논의하고 하루 빨리 논의의 결과가 현장에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발 원피스는 잊어달라. 거론되는 것 자체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니 말이다. 
 
권대경 정경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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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