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이태원 코로나 프리덤

입력 : 2020-09-23 오전 6:00:00
지난주 이태원을 다녀왔다. ‘트렌스젠더’, ‘빅사이즈’, ‘인터내셔널 숍’, ‘할랄’ 등 여전히 간판만 봐도 국내에서 가장 자유, 글로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곳이다. 그 덕분에 이 미군부대 뒷편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동네는 강남과 홍대 못지 않은 개성있는 상권으로 성장했다. 올 초 그 곳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까지 방영될 정도로 국내외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5월 황금연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코로나19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고 K-방역이 유행어처럼 나돌던 시기에 이태원클럽을 다녀간 젊은 층 사이에 확진자가 급증했다. 이후 인천 학원강사 집단감염, 부천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 등으로 퍼지며 N차 감염이란 단어까지 만들며 전국을 휩쓸었다.
 
당시 클럽을 아예 닫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원 제재를 할 필요는 있었다. 클럽은 어느 정도 신체접촉을 기반으로 이용하는 문화인데다 마스크 착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팔찌를 차면 여러 클럽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명부 작성은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밀폐된 공간에 수백명이 밀집해 밀접한 상황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춤까지 추니 확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방역당국의 대응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방심은 늘 화를 낳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나치게 K-방역에 취해 황금연휴를 안이하게 대처했는지 모른다. 실제 질병관리청에서는 감염자 한 명이 최대 몇 명을 동시에 감염시킬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R0값이 연휴 이전에는 0.5였지만 연휴기간에는 2.56까지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5월 황금연휴 이후 집단감염 확산, 광복절 이후 대유행이 이를 증명한다.
 
이태원클럽은 여전히 문이 닫혀 있다. 더이상 이태원클럽발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유행의 원흉은 이태원클럽에서 방문판매와 물류센터를 거쳐 교회로 옮겨갔지만 4개월째 방역당국의 화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인구 2만명 남짓의 이태원은 지금까지도 집단감염의 대명사로 취급받고 있다.
 
강남·홍대와 달리 물리적 확장성에 한계가 있고 배후 주거단지나 대학·오피스 등과 거리가 있는 이태원은 클럽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국내 다른 곳보다도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지역 특성 탓에 일찍이 클럽문화가 자리잡았고 이는 1990년대 댄스음악 전성기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쇼핑도 세계음식도 라운지바도 있지만 이태원에서 클럽이 갖는 역할을 홍대나 강남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집합금지의 취지야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모든 업종에 공평할까. 특정 업종에 가혹하진 않을까.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했음에도 교회에는 그렇지 못한가. 룸살롱, 코인노래방과 PC방에 가해지는 부정적인 시선을 식당·커피숍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고위험시설을 정하는 기준에 감염확산 위험성 외에도 ‘다수의 반발’이라는 지표가 들어가진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커피숍에 테이크아웃만 허용, 식당에 9시 이후 취식금지를 적용하듯 다른 시설에도 현실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코로나19가 겨울에 시작해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나 교류 제한, 해외 출국 제한 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실제 고통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실직자나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다. 월 임대료만 1000만원이 넘는 가게에 몇 달 휴업한 보상으로 100만원, 200만원을 지원해봐야 생색내기에 그치는 건 누가 봐도 자명하다.
 
전 국민에게 휴대폰 요금 일부를 지원하거나 이미 한 차례 써먹은 재난지원금을 소액 지원하는 식의 정책은 지나치게 간접적이고 효과도 미미하다. 누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봤고, 어느 지역이 특히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지금보다 더 자영업자, 그리고 이태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젊은이들이 타락하는, 성소수자들이 판치는 클럽들이 싹 다 문 닫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이 가지 않는다고 클럽이나 PC방, 코인노래방이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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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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