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개방형 혁신 외치지만 '제2 렉라자' 없다

국산신약 31호 '레이저티닙' 성공 사례 이후 잠잠
해외선 '통 큰 결정'…"생태계 형성 과정"

입력 : 2022-08-24 오전 7:00:00
국산신약 31호로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 (사진=유한양행)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중견 제약사부터 상위권 매출을 올리는 기업까지 신약개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기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해외에선 임상 개발 가속화를 위한 결단으로 성공 사례가 최근까지 이어져 국내 산업계의 인식 변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 제약기업 수십여곳은 바이오벤처 등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요 사업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외부 기관이나 기업, 연구소 등에서 개발된 후보물질 또는 기술을 들여와 자체 역량을 더해 신약으로 개발하는 제약바이오산업 전략이다.
 
우리보다 먼저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정착한 해외에선 여러 형태의 사업 방식이 구체화해 실제 신약개발 성과로도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선 대형 제약사의 바이오벤처 지분투자, 특정 후보물질에 대한 공동 연구 또는 기술이전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주를 이룬다.
 
최근 들어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빛을 본 후보물질은 '레이저티닙'이다. 레이저티닙은 오스코텍(039200)이 연구 중이던 후보물질이다. 유한양행(000100)은 지난 2015년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레이저티닙 기술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해 지난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았다. 국산신약 31호로 허가된 레이저티닙의 제품명은 '렉라자'로 결정됐다.
 
유한양행은 국내 허가와 별개로 지난 2018년 글로벌 제약사 얀센과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기술을 넘겨받은 얀센은 레이저티닙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오스코텍-유한양행-얀센으로 이어지는 레이저티닙 개발 과정이 가장 인상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동시에 레이저티닙의 뒤를 이을 결실이 없는 점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글로벌 임상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레이저티닙은 우리나라 오픈 이노베이션에 큰 획을 그었다"며 "국내 기업 간 협력이 현실화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글로벌 제약사에까지 확대된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가장 좋은 그림은 다른 기업이나 기관들이 뜻을 모아 제2의 레이저티닙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면서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기업은 많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가 된 곳은 많지 않아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업계에 정통한 다른 인사는 오픈 이노베이션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충돌해 구체적인 결실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후보물질을 넘기는 쪽에선 되도록 많은 금액을, 넘겨받는 쪽에선 불확실성을 감안한 지출 최소화를 요구하면서 협력이 무산되는 경우를 겨냥한 비판이다.
 
참고 사례로는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 과정이 지목된다.
 
두 기업이 함께 백신을 개발한 과정을 보면, 초기 단계 임상까지 진행한 바이오엔테크는 개발 비용에 대한 보전을 요청하지 않고 화이자에 다음 단계 임상을 맡겼다. 대신 백신이 상용화될 경우 발생하는 수익을 나누자고 요청했다. 화이자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전 세계 각지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해 결국 각국 승인을 얻어냈다.
 
이 관계자는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의 협력은 우리나라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나라에선 주로 계약금이나 기술료 등 금액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좋은 물질이 결실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비용 차원을 뛰어넘는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업계 전문가는 현 상황에서 가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점을 아쉽게 평가하면서도 역량 고도화를 위한 발판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업체 간 오픈 이노베이션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신약을 개발한 경험을 다수 확보해 후보물질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임상 단계와 제반 사항을 모두 고려해 가치를 산정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산업계는 이 과정이 익숙치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산업계는) 경험이 부족하다기보다 과정의 연속성이 형성되고 있는 단계"라며 "과거에는 후보물질을 발굴해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아 상장하는 게 사업 모델이었다면 여러 갈래의 가치 향상이 담보된 생태계 형성이 익숙해지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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