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교통사고 후 우울증 극단 선택…보험급 지급해야”

"사고 전 정신질환·극단적 시도 없어"
"사고로 인한 상해의 직접적 결과로 봐야"

입력 : 2022-09-04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교통사고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지라도, 교통사고로 우울증이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가 현대해상(001450)화재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1억원 규모의 보험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6년 1월 현대해상과 운전자보험계약을 맺었다. 피보험자는 A씨 모친 B씨이고, 보험수익자는 A씨로 정했다. 계약상 피보험자인 모친이 고의로 자신을 해치는 경우 현대해상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고, 다만 모친이 심신상실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A씨는 이와 함께 교통상해사망 특약에도 가입했다. 피보험자인 모친이 교통사고로 발생한 상해의 직접결과로 인해 사망한 경우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보험가입 후 1년8개월 가량이 지난 이듬해 9월, 모친 B씨는 강원도 원주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피하려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B씨는 뇌진탕, 경부척수 손상, 추간판탈출증 등 상해를 입고 같은 달 말까지 10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 B씨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몽유병 등 증상이 나타나 같은 해 11월부터 다음해 5월경까지 꾸준히 입원과 통원 치료 등을 반복했다. B씨는 “비오는 날에 몸이 떨린다, 불안하고 퇴원 후 하루, 이틀은 괜찮았는데 사고가 온 날 비가 왔었다”며 증상을 호소했는데, 담당의사는 비오는 날씨가 사고 당시 현장을 재경험하도록 한다고 판단했다. B씨가 앞선 교통사고를 당할 당시에는 비가 왔었다. 
 
우울증 등이 완치되지 못한 상황에서 B씨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B씨는 비오는 날 남편을 병원에서 간병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B씨가 교통사고로 발생한 우울증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등진 것이라며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보험사는 “(교통사고의) 경미한 상해와 짧은 치료기간 등으로 보아, 우울증은 교통사고로 입은 상해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앞선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는 교통사고 이전 정신과적 질환을 보인 점이 없을 뿐 아니라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향을 지녔던 점,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은 위중하지 않았더라도 사고 당시 처했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교통사고 후 불안, 불면, 두통 등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발생했고 이것이 선행요인이 돼 주요우울장애까지 병발했다”며 “사고 당시와 비슷한 환경이 되자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와 달리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B씨가 목숨을 끊은 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주요우울장애 검사 및 치료를 받았으나, 입원 기간 동안 심신상실로 보이는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라며 “B씨 주치의는 사고 당시 몽유병이나 해리 증상이 나타난 건지 알 수 없고 하나의 개연성을 말한 것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사고 당시 심신상실 근거로 삼기는 부적절하다”고 봤다. 
 
이어 “사고 당시 B씨는 남편 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생활했는데 넋이 나간 멍한 상태에 있었다면 애초에 병간호 등이 불가능하고 주위 사람들에 의해 발견돼 조치됐을 것”이라며 “자신의 정체성 등을 상실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지장을 받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B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외상의 부정적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외부적 상황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주치의는 주요우울장애의 악화가능성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또 “B씨가 교통사고 전에 정신질환을 겪었다거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종합하면, B씨는 교통사고로 발생한 상해의 직접 결과로 사망했다고 추단하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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