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은행 창구에서 특정 보험사의 상품을 25% 넘게 팔 수 없도록 했던 '방카슈랑스 25%룰'이 20년 만에 완화되지만, 보험사들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습니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예고된 상황에서 자산운용 수익성 악화와 회계 규제 부담까지 겹치면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정례회의에서 '금융기관보험대리점의 판매비중 규제개선'을 포함한 총 96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신규 지정했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생명보험사의 방카슈랑스 채널 내 상품 판매 비중은 향후 보험업권별 참여 보험사 수에 따라 33%~75%로 결정됩니다. 2005년부터 약 20년간 이어진 동일 보험사 상품 비중 규제가 처음으로 손질된 것입니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이 보험사의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구조로, 보험설계사 등 전속 채널에 비해 보험료가 저렴하고 비교적 불완전판매 비율도 낮습니다. 그러나 보험업계의 이해관계로 인해 오랜 기간 구조적 제약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은행 창구에서 팔리는 상품은 대부분 저축성보험에 집중돼 있습니다. 종신보험이나 건강보험 같은 보장성 상품은 여전히 설계사 채널과의 충돌 우려로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는 저축성보험 판매 확대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축성보험은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서는 예금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 수요가 늘어납니다. 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단기 실적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운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보험사는 고객이 낸 보험료를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데 금리가 낮아지면 새로 편입하는 채권 수익률도 하락하게 됩니다. 문제는 과거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입니다. 기준금리가 인하돼 운용수익이 줄어도 계약자에게는 약속한 금리를 그대로 지급해야 하므로 수익보다 지출이 많은 '역마진'이 발생합니다. 특히 생보사의 경우 장기 보장상품과 저축성보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손해보험사보다 충격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IFRS17 체계에서는 보험계약이 매출이 아닌 부채로 인식됩니다. 이는 저축성보험 판매 확대가 실적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재무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기본자본 품질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자산운용 수익률은 떨어지고 부채는 늘어나는 구조가 반복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킥스·K-ICS) 관리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7일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지만, 금융시장은 5월 또는 7월을 기준금리 인하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지난해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대거 판매했던 상황을 두고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시 일부 생보사는 연 5%대 후반의 확정금리 상품을 방카슈랑스를 통해 집중 판매했습니다.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기 전 고금리 저축성 일시납 보험을 집중적으로 판 것입니다. 그 결과 방카슈랑스의 초회보험료는 16조1165억원으로 전체 초회보험료(23조1845억원)의 69.5%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습니다.
금융위는 이번 규제 완화 조치를 시범 운영한 뒤 연말까지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부터 적용할 최종 판매비중 비율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규제는 완화됐지만 보험사들이 단기 실적과 장기 리스크 사이에서 계산기를 더 복잡하게 두드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은행에서 보험을 가입하는 고객은 대부분 저축성 상품을 원한다"며 "기준금리가 현재 동결됐지만 추후 인하 가능성이 더 있다고 하면 방카슈랑스 상품의 수요는 다시 늘어날 수 있어 보험사 부담도 큰데, 장기적 자산운용 여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방카슈랑스 25%룰'이 20년 만에 완화됐지만, 보험사들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예고된 상황에서 자산운용 수익성 악화와 회계 규제 부담까지 겹쳐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영업점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