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자본성증권을 발행해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을 방어해왔던 보험사들이 새로운 부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자본성증권 발행이 급증하면서 콜옵션(조기상환) 만기가 대규모로 도래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기본자본 중심의 킥스 규제 도입을 예고하면서 기존처럼 발행으로 상환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전략이 쉽지 않은 환경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은 2023년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지급여력비율 관리 필요성이 커지면서 자본성증권 발행을 적극적으로 늘려왔습니다.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킥스 체제에서는 금리 하락 시 부채 평가액이 증가해 지급여력비율이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자본 확충 수단으로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이 활용돼 왔습니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발행한 자본성증권 규모는 9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2024년 8조6650억원에 이어 2년 연속 최대 발행 기록을 경신한 겁니다. 보험사들이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채무성 증권을 통해 단기간에 가용자본을 확충하는 전략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자본성증권은 회계·감독 기준상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일반 채권과 마찬가지로 조 단위의 이자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보험사에는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실제로는 이자 지급이 수반되는 채무 성격을 지니므로 발행 물량이 누적될수록 손익에 미치는 부담도 커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자본성증권에는 발행 5년 이후 콜옵션이 부여돼 있어, 시장에서는 관행적으로 조기상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왔습니다.
최근 보험사 자본성증권 물량이 시장에 대거 쏟아지면서 투자자들의 선별 기준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콜옵션 행사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신규 발행 시 요구 금리가 높아질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만기가 도래한 자본성증권을 신규 발행으로 상환하는 방식으로 조기상환 관행을 유지해 왔습니다.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해 킥스 비율을 방어하는 동시에 만기 도래 채권을 신규 발행으로 상환하는 방법을 반복한 겁니다.
기본자본 킥스 도입 예고…자본성증권 전략에 변화
이 같은 자본 조달 방식에 변화가 예상되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규제 기조가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지급여력 규제 체계를 기본자본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등 보완자본보다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같은 순수 자기자본의 비중을 중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자본 킥스 규제가 도입되면 자본성증권을 발행해도 지급여력비율 개선 효과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자본성증권의 상당 부분이 보완자본으로 분류되는 만큼, 향후에는 자본 확충 전략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기본자본 관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한 단기적인 자본 보강보다는 이익잉여금 적립이나 자본금 확충 등 보다 세밀한 자본 관리 전략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상반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규제 시행을 앞두고 이미 상당수 보험사가 필요한 자본성증권을 선제적으로 발행해 올해 들어 추가 발행 수요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콜옵션 만기 물량 집중…차환 부담 현실화
문제는 자본성증권 발행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과거 발행 물량에 대한 콜옵션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험사들이 부담해야 할 자본성증권 콜옵션 만기 규모는 올해 약 3조원, 내년에는 5조원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신규 발행을 통해 만기 도래 채권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조기상환 관행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기본자본 중심 규제가 도입될 경우 자본성증권을 통한 차환 자체가 자본비율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집니다다.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서 자산운용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힙니다. 과거 금리 상승기에 비교적 높은 금리로 발행한 자본성증권에 대한 이자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추가 발행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은 콜옵션 행사 여부를 두고 신중한 검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조기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 신뢰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무리한 차환 발행 역시 자본 구조와 비용 측면에서 부담을 키울 수 있어서입니다.
보험업계에서는 향후 자본성증권 발행 전략이 과거처럼 킥스 비율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자본 구조 전반을 고려한 보다 보수적인 접근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입니다. 건전성 관리와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 부담이 겹치면 이익이 나더라도 배당 여력까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자본 중심 규제가 예고된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한 단기 대응보다는 이익잉여금 적립 등 중장기적인 자본 관리 전략을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자본 중심 규제가 예고된 상황에서는 과거처럼 발행과 차환에 의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며 "결국 전통적인 영업을 통한 보험사의 수익 창출 능력이 여건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지=연합뉴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