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과 2차 미·중 패권 전쟁, 그리고 무너진 '가치 외교'와 '12·3 비상계엄'에 따른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 추락. 차기 정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외교·안보 과제입니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 어느 진영이 집권하더라도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챙기는 '실용외교'가 절실하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실패한 '가치외교'…관계 재정립 '절실'
18일 임기 3년도 채우지 못한 윤석열정부의 외교 방향성은 '가치 외교'로 요약됩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구도라는 가치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은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신냉전 구도를 격화시켰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가치 외교로 인해 대한민국 외교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현실적 문제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으로 기존 국제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고착화된 국제질서를 깨고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주의' 위주의 외교 협상 방식을 본격화했습니다. 북·중·러를 배척하고 한·미 동맹에 기댄 윤석열정부의 외교 방식이 수명을 다한 셈입니다.
결국 달라진 국제 환경에 발맞춰 차기 정부도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펼칠 때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선 2차 패권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유연성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미·중 패권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실익을 중점에 둔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관세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문제,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도 명확한 한국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속전속결' 방식의 트럼프 행정부 외교 방식에 끌려가기보다는 대한민국 차기 정부가 국익에 대해 판단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반도 긴장 관계를 고조시킨 북·중·러 대 한·미·일 이라는 신냉전 구도를 해소할 필요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서도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밀착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북한 억제를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때문에 임기 중반에 들어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만약 차기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에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한반도 안보의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북 위협을 해소하지 못한 채 대북 제재가 완화되면, 한반도 긴장감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일본과의 관계 재정립도 과제입니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데요.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는 '편향외교'라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사도광산과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양보했지만, 일본의 호응은 없었습니다. 결국 한·일 관계의 재정립도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2015년 9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동맹보다 중요한 건 실리…국익 우선"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경제·안보의 주도권을 확실히 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차기 정부에 주문합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외교라는 것은 국익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가치 외교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치의 원천을 추종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한·미 동맹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익을 가려가면서 손을 잡아야 한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이익에 따라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익을 위해서는 경제·안보에 있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주한미군의 문제도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주한미군과 방위비로 인한 미국의 비용 절약과 동북아에서의 핵심 이익 등 손익 계산을 명확하게 요구하는 대한민국 주도의 외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통일연구원장을 지낸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균형적 실용외교라는 말은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쓰던 말이다. 다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용외교를 통해 국익을 추진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유진영 정상 중 유일하게 중국 70주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전략적 이익을 얻기 위한 행보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어 "중국은 경제적 문제와 북한 관여도 문제, 러시아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문제를 포함한 우리 기업의 재진출 문제 등이 걸려있다"며 "한쪽으로 치우쳤던 외교에서 다시 균형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