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999년 대비 2003~2021년 평균 육지 물질량 변화(왼쪽) 및 해수면 변화 그래프. (자료= 서울대 서기원 교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지난 3월28일 발표된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과 서기원 교수 연구팀의 논문은 오늘날 기후 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육지 수자원의 붕괴를 야기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20년간 위성 중력 관측(GRACE), 토양 수분 위성 자료(SM), 해수면 변화 측정, 지구 자전축 움직임(Pole Motion)이라는 서로 다른 데이터 소스를 통합 분석하여, 지표수 저장량의 거대한 감소를 정량화했습니다.
1.6조 톤의 물이 사라졌다…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
지구 시스템에서 물의 순환은 생명을 유지하고 지구의 다양한 환경을 조율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물의 순환, 즉 수문(水文) 순환은 대기, 육지, 해양, 그리고 지하수를 포함하는 지구의 모든 부분에서 일어나는 물의 이동과 변화를 말합니다. 지구 표면과 땅에 있는 물의 양과 분포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는 생명을 유지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지원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태양 에너지를 주동력으로 하여, 증발, 응결, 강수, 침투, 지표수 흐름 및 지하수 흐름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됩니다.
서기원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 발생한 급격한 수분 손실입니다. 이 시기 동안 육지는 약 1조6000억톤의 물을 잃었으며, 이는 같은 시기의 그린란드 빙하 손실량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합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토양 수분 감소는 계속되어 추가로 1조톤이 감소했다.이 감소는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상승(약 4.4mm)과 지구의 극 이동(약 45cm)이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관측 결과로 뒷받침된다. 강수량 부족과 안정적인 증발산이 이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며, 2021년 현재 토양 수분은 회복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수분 손실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의 수문 순환 체계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분이 바다로 유입됨에 따라 지구의 질량 분포가 달라졌고, 이는 지구의 회전 극이 약 45cm 이동하는 현상으로도 관측되었습니다. 이는 수문 변화가 지구의 물리적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입니다.
“지하수 고갈은 인류가 만든 지질학적 사건”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애리조나 대학교의 환경과학자 캐서린 제이콥스(Catherine Jacobs) 박사가 주장해 온 이론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기후 변화와 수문 시스템 간의 복합적 관계를 분석해 왔으며, 특히 지하수 고갈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강조해왔습니다.
“지하수는 한번 고갈되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동안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해수면 상승과 지하수 추출 사이의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 변화가 지구의 자전축을 움직일 만큼 측정 가능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경고합니다.
제이콥스 박사는 이러한 단절된 인식을 ‘수문 인식의 단층’이라 표현하며, 다양한 데이터 세트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연결 고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서 교수팀의 연구는 바로 그러한 다차원적 접근을 실현한 사례로, 제이콥스 박사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연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극이 이동하는 시대: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수분 증발, 증산, 불균형한 강수량, 그리고 지속되는 가뭄은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이번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건조해지는 지역의 면적이, 강수량이 증가하는 지역보다 훨씬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제이콥스 박사가 지적한 바 있는 ‘지역 수문 불균형’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물이 부족해지고 있으며, 그 부족의 정도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곧 생존의 차이가 되고 있습니다.
물은 단지 자원이 아니다…지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서기원 교수의 연구팀은 논문에서 “현재 기후 조건 하에서는 미래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단순한 통계나 자료를 넘어, 지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제이콥스 박사의 이론은 그 경고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21세기의 물 문제는 단지 ‘부족’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극이 움직이고, 물이 줄어드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가 물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