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1995년 11월20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듀스 해체 이후 성공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당시 살인 용의자로 구속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성재의 여자친구 K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돼 풀려났다. 30년이 됐지만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건 전날 찍은 영상에서 김성재가 웃고 있다. 그는 12시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진=유튜브 영상 갈무리)
1993년 4월,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는 한국 힙합의 원조였다.
내가 듀스의 빅팬이라는 사실과 무관하게, 김성재는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평판의 일치에서, 춤에 대한 열정과 기량에서, 당대를 훌쩍 뛰어넘은 스타일의 세련됨에서 그를 앞설 스타를 나는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 그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고 ‘패피(패션피플)들의 패피’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한국 대중음악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가수로 떠올리기에 앞서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인간으로 떠올린다. 대개 그러하겠지만 그도 누군가에게 살가운 형이었고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친구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착한 아들이었고 그 누군가에겐 탐나는 남자였다.
지난 2019년부터 이듬해까지 김성재 변사사건을 취재했다.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이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재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김성재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그 결과를 논픽션 르포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여의도책방)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듀스 노래에 기대 고3 시절을 버텼던 내게 그 취재는, 펜(pen)의 의무라기보다, 팬(fan)의 의무에 가까웠다.
김성재 변사사건을 다룬 논픽션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 표지
물론 수십년 전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확인된 사실 전부를 다 쓸 수 없다는 서술의 한계였다. 쓰고 지운 문장이 허다했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때때로 무력했다.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던 진실은, 말할 수 없는 저 너머에 가 있었다.
그때마다 두 장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건 전날과 당일 검안 사진이었다. 밝게 웃던 그는 17시간 만에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두 사진의 간극은 아득했다. 그 사진들은 내 글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리키고 있었다. 그 길에 당도하지 못한 채 사진과 사진 사이를 방황했다. 논픽션은 그 방황의 기록이었다.
지난 18일은 가수 김성재의 53번째 생일이었다. 그가 떠난 지 서른 즈음이 됐지만, 그의 노래는 남아 그를 추억하게 한다. “오늘 니 모습은 더 예쁘게 보여/오늘은 너만의 날이야/항상 나를 위해 같이 기뻐하고/또 같이 슬퍼해 주었던 너/아름다운 너의 그 모습 그대로/항상 머물러 주기를 바래.” 이현도가 작사·작곡한 <너의 생일>의 한 대목으로 유작이 된 그의 솔로 앨범에 수록돼 있다.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말처럼, 23살 나이에 별이 된 그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항상 머물러’ 있다. 눈부신 오늘,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노래로 김성재를 부르려 한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