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트럼프 2기 글로벌 무역 분쟁이 인공지능(AI) 기술 영역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미·중 AI 기술을 쫓아가는 우리나라의 원천기술 리더십은 여전히 뒤처지고 있습니다. AI 생태계의 빠른 변모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AI를 둘러싼 미·중의 경제 패권은 우리 주력 수출품인 기계·모빌리티·바이오산업에 큰 파고가 될 전망입니다. 중가격·고품질 제조업 강점을 바탕으로 중국산 제품과의 질적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되, 원천기술 리더십보다 응용 완성도·보안 안정성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27일 산업연구원의 '산업경제분석'을 보면, 미국은 범용 AI 모델과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B2C)에서 두각을 보이는 반면, 중국은 산업 특화 AI 모델을 바탕으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B2B)에 강점을 보인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미·중 AI…생태계 구축에 '고삐'
27일 산업연구원의 '산업경제분석'을 보면, 지난 2월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AI 관련 기업 수장들과 만난 후 '민영식 AI 생태계 구축'에 대한 정책적 지원인 '민영경제촉진법' 제정에 탄력이 붙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오는 27~30일 민영경제촉진법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민영경제촉진법 초안에는 국무원과 지방정부의 민영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정책 시행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업연 중국연구팀은 딥시크를 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AI 기술을 기존 산업에 적용하는 중국식 AI 생태계 구축에 총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AI 활용 모델은 미국과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범용 AI 모델과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B2C)에서 두각을 보이는 반면, 중국은 산업 특화 AI 모델을 바탕으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B2B)이 강점입니다.
미국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컴퓨팅 플랫폼(NVIDIA, AWS, Google Cloud, MS Azure)에 주력하고 있으나 중국은 산업용 데이터를 처리하는 특화된 인프라와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 중입니다.
특히 딥시크 등 LLM(거대언어모델) 모델의 산업 버전을 구축하고 AI를 핵심 생산 시스템에 도입하는 모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산업용 데이터의 강점을 기반으로 산업용 LLM 모델과 기업 중심(B2B) 혁신을 통해 산업별로 AI 기술을 적용하고 관련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겁니다.
공급과잉의 주범인 중국의 주요신산업은 결국 AI 기술 응용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산업에도 적용해 더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저렴한 노동력, 중국 정부의 보조금뿐만이 아닌 AI를 활용한 생산 공정 최적화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WEF(World Economic Forum)에서 선정하는 전 세계 등대공장(스마트공장)14) 중 41.8%(79개)가 중국 소재입니다.
중국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산업이 AI 기반 프로세스를 도입해 생산 효율성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선례가 이를 방증합니다. 예컨대 CATL의 경우 중국에 주재한 모든 공장이 등대공장으로 AI,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활용해 불량률, 에너지 소비율을 낮추고 납품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의 주요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기업들도 스마트공장을 보유 중입니다. 로봇·자율주행·헬스케어 분야도 AI 기술을 접목한 고품질 저비용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장할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분석합니다.
기존 전통산업 및 신산업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AI 제조업이 등장하면서 중국식 AI 제조 생태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은교 중국연구팀 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2024 부산국제신발·섬유패션전시회'(패패부산)가 열린 지난해 10월3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관람객이 AI(인공지능)를 이용한 패션 제안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응용 완성도·보안 전략…통상협력 모색
지난해 국가인공지능위원회도 '국가 AI 전략 정책 방향'을 밝히면서 산업 AI 확산을 위한 10대 과제를 내밀었지만 선택·집중의 세부 과제 수립과 효과적 실행의 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조은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AI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추격해야 하는 추격자 입장에 놓여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며 "우리의 전략은 중국이 만들어가는 AI 독립생태계 구축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후발주자이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한국은 중가격·고품질 제조업 강점을 바탕으로 반도체·로봇·바이오 제조에 AI를 신속하게 적용해 중국산 제품과 질적 차별화를 노릴 필요가 있다"며 "원천기술 리더십보다는 응용 완성도·보안 안정성의 측면에서 글로벌 우위를 추구하기 위한 'K-AI 제조혁신 전략' 마련이 긴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지원과 관련해서는 "2027년까지 AI 스타트업 투자 3조원 규모의 펀드 조성 등 자금 투입을 발표했으나 미·중 양국보다 한국 AI 분야의 민간 부문 투자규모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 주도의 마중물 역할을 넘어 민간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AI 빅펀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중 AI 기술 블록화 대응의 통상전략에 대해서는 "AI 분야에서 미국과의 공동기술 등의 기술협력보다는 미국이 제조업 부흥을 꿈꾸고 있으나 보유하지 못한 제조업 기반, 인재 등을 활용해 미국시장 진출 및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표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으면서 보안성이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조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글로벌사우스 지역에 대한 투자·수출전략 수립도 제언했습니다.
27일 산업연구원의 '산업경제분석'을 보면, WEF(World Economic Forum)에서 선정하는 전 세계 등대공장(스마트공장)14) 중 41.8%(79개)가 중국 소재이다. (출처=산업연구원)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