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9월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북한이 28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참전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앞서 러시아도 26일(현지시간) 북한군의 참전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동안 침묵하던 북한과 러시아가 북한군 참전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음 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전승 80주년 기념식 등을 계기로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28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입장문이라며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들은 높은 전투 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하며 우크라이나 신 나치스 세력을 섬멸하고 러시아연방의 영토를 해방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북한 매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참전이 북·러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 단결을 더욱 반석같이 다지고 양국의 발전과 번영을 담보하며 북한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사명이라고 정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러시아연방 내에서 진행된 북한군의 군사활동은 유엔 헌장을 비롯한 국제법과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반 조항과 정신에 전적으로 부합된다"며 "그 이행의 가장 충실한 행동적 표현의 본보기적 사례, 훌륭한 귀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파병 북한군에게 보낸 메시지를 소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정의를 위해 싸운 그들은 모두가 영웅들이며 조국의 명예의 대표자들"이라며 "우리 수도에는 곧 전투 위훈비가 건립될 것이며 희생된 군인들의 묘비 앞에는 조국과 인민이 안겨주는 영생 기원의 꽃송이들이 놓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은 "강자의 위대한 명함과 승리자의 영광을 떨친 군인들의 전투 정신과 영웅성은 후세토록 존경과 명예의 높은 단상에서 길이 빛날 것"이라며 "조국은 위대한 명예를 지켜 싸운 그들의 넋을 길이 전해가야 하며, 참전 용사들의 가족들을 특별히 우대하고 보살피기 위한 중요한 국가적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보도와 관련해 정부에서는 '불법행위를 포장하기 위한 기만'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담한 것은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명백한 불법적 행위"라며 "이를 공식 인정한 것은 스스로 범죄 행위를 자인한 것으로 우리 군은 국제사회와 함께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의 발표는 스스로의 불법적 행위를 포장하기 위한 기만적인 행태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또 전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근거를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관련 동향을 잘 지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에 대한 북한의 파병이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을 지적하고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북한이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해도 북한군 파병이 국제 규범을 어긴 불법적인 행위이고 북한의 젊은이들을 정권 안위를 위해 무참히 희생시킨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진실은 결코 가릴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하며, 현재와 같은 북한과 러시아와의 군사적 야합이 지속될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발표가 북·러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파병 공식화는 북·러 간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의 5월 러시아 전승절 참석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러시아의 북한군 파병 공식 확인, 북한군 참가 쿠르스크 지역 탈환 승리 소식 등은 김 위원장의 전승절 참가에 대한 긍정적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 나타나기보다는 푸틴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의 전쟁 참가 반대급부를 얻어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다음 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80주년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쿠르스크 승리를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승전기념 이벤트를 기획해 이를 계기로 북·러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참전 사실 공개는 대미 견제 및 협상 레버리지 확보를 위한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이자, 북·러 정상회담을 위한 빌드업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위원은 "전승절 성격과 참석 범위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2차대전 승전국을 포함해 현재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에 참전해 승전을 거둔 국가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북한 입장에서 북·러 관계의 위상을 부각 시킬 수 있는 보다 주목받는 형식을 원할 가능성이 있어 러시아 전승절 다자 무대보다는 북한의 기여를 부각시킬 수 있는 북·러 양자 정상회담을 위한 방러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