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 천공이 지난 1월 17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3층에서 수행원 및 지인들과 탑승 수속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군사안보 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의 폭로 이후 석 달 가까이 천공의 관저 개입 의제를 보도한 주요 언론은 거의 없었다. 레거시 언론이 외면하고 있을 때, 경제중심 매체인 <뉴스토마토>가 이 의제를 조용히 파고 들었다. 왜 <뉴스토마토>는 천공 의제에 주목했을까. 김기성 편집국장의 증언.
"역술인에게 대통령 관저 이전이라는 국가대사가 영향을 받았다는 의혹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종대 전 의원을 개인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고요."
최병호 기자 포함해 특별취재팀이 구성했다. 최 기자는 "고발을 각오하고 취재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취재 서막을 이렇게 공개한다.
"김종대 전 의원이 출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게 됐습니다. 군 고위관계자한테서 들은 얘기를 전하더군요. 2022년 3월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맞물려 천공과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인수위 청와대이전 TF팀장)이 용산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 육군본부 서울사무소를 둘러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이 발언을 하고 대통령실로부터 고발됐죠. 해가 바뀌어 2023년 1월 4일 김 전 의원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때 취재가 시작됐죠."
김 전 의원은 <뉴스토마토>가 진행하는 유튜브채널에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진행자는 노영희 변호사였다. 김 전 의원은 대통령실 고발과 관련해 노 변호사를 자신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한 상태였다. 노 변호사를 통해 김 전 의원이 경찰에 출석해 진술한 내용을 확인한다. 그런데 최 기자는 고발장을 보면서 뭔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고발인이 천공 또는 김용현 경호처장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이라는 점이었다. 김 전 의원이 천공과 김용현 경호처장을 상대로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고발한 점은 '당사자 적격성' 원칙에 맞지 않아 보였다.
고발 이후 벌어진 조사 과정 역시 심상치 않았다. 김 전 의원이 1차 조사를 받았을 때까지 경찰은 천공과 김용현 경호처장 등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여러 방법으로 김 전 의원에게 관련 의혹을 알린 제보자가 누구인지 색출하는 데 집중하는 인상을 받았다. 최 기자는 "대통령실이 뭔가, 감추고 있구나"하는 강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취재 초점은 김종대 전 의원이 언급한 '군 고위관계자'가 누군인지 확인하는데 맞춰졌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익명 원칙을 고수했다. 그가 언급한 내용과 주변 정황을 종합해 '군 고위관계자’가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취재팀은 추정한다. 이후 취재팀은 1월 중순까지 부승찬 전 대변인과 두세 차례 만났다. 그는 김 전 의원이 말한 '군 고위관계자'가 자신이 맞다는 사실을 익명 보도를 전제로 확인해 주었다.
부 당시 대변인은 2022년 4월 1일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에서 남영신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남 총장이 3월쯤 천공과 김용현 처장이 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를 사전 답사했다는 보고를 공관 관리관한테서 받았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부 전 대변인이 행사 당시 잠시 화장실에 들렸는데, 남 전 총장은 거기에 따라와서 귀속말로 천공 이야기를 했다고도 했다.
핵심 증언이 나왔으니, 다음은 증언에 대한 크로스 체크였다. 취재팀은 부 전 대변인 외에 이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을 접촉했다. 크로스 체크 대상에는 천공, 남영신 전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천공을 목격했다는 공관 관리관(부사관) 등이 포함된다. 취재팀이 강원도 고성까지 찾아갔지만 천공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남 전 총장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공관 관리관 역시 자택까지 찾아갔으나 역시 증언을 거부했다.
취재팀은 인터뷰 범위를 더 넓혀야 했다. 하지만 집권 초기였다. 핵심 관련자들은 모두 증언을 거부했다. 남 전 총장 보고라인에 있었던 인물은 처음에는 진실을 말해줄 것처럼 하다가 결국에는 피했다. 다행히 핵심 보고라인은 아니지만, 한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남동 참모총장 공관으로 2대의 검은색 카니발이 들어왔는데, 앞차에는 김용현 경호처장과 한 국회의원이 타고 있었고, 뒤차에는 천공이 타고 있었다. 김 처장이 (공관 측에) '뒤차는 그냥 통과를 시키고, (출입)기록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었다.
부승찬 민주당 의원(전 국방부 대변인)이 2023년 2월 19일 오후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저서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재팀은 다른 관계자는 익명으로 하더라도 부 전 대변인은 실명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 전 대변인은 자기 이름이 기사에 실리는 걸 주저했다. 취재팀은 부 전 대변인을 2~3주간 설득했지만 확답을 얻지 못했다. 부 전 대변인 입장에서는 신변의 위협이 걱정됐을 터였다.
그해 2월 1일, 김기성 편집국장과 기자 2명이 당시 부 전 대변인이 머물고 있던 제주도에 찾아갔다. 마지막 설득이었다고 한다. 세 기자는 밤 11시쯤까지 기다리다가 부 전 대변인을 만난다. 1시간 넘는 설득 끝에 실명 기사를 써도 된다는 결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다음날인 2월 2일 드디어 기사를 출고한다.
언론계의 반응은 '군 고위관계자'라는 익명으로 보도됐던 최초 의혹제기 때와 사뭇 달랐다. <뉴스토마토>의 자체 집계 결과, 2월 한달 동안 유튜브와 인터넷언론 중심으로 1509건의 관련 기사가 보도됐다. 특히 영국 <더 타임즈>의 보도가 인상적이었다. 그해 2월 22일 <뉴스토마토> 보도를 일부 인용해 <한국의 대통령 윤석열은 점쟁이가 나를 조종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국내 주류 언론은 검증보도를 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보도는 인상적이었다. 즉각적으로 후속 검증 보도를 했다. 부승찬 전 대변인의 저서가 기사 출처였다는 점도 <뉴스토마토>와 달랐다.
천공 의제는 미디어 의제를 넘어서,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하는 공중의제화 단계까지 갔다. 관련 의혹이 확산된 직후인 2023년 2월 8일에 발표된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2.5%로 직전 조사에 비해 6.8% 떨어지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실의 반격이 시작된다. Dog傳은 계속된다.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