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기자] 통화 가격을 추종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세를 넓히고 있습니다. 시세가 급등락하는 여느 가상화폐와 달리 화폐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에 사용처도 늘고 있습니다. 이를 악용, 외화 밀반출 등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제도권에 편입해야 한다거나,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한국은행은 아직 부정적입니다.
8일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T(이하 테더) 시세는 전일보다 소폭 하락한 1410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C(유에스디코인)도 같은 가격으로 거래 중입니다.
테더와 유에스디코인은 미국 달러 가치에 고정(pegging)된 스테이블코인입니다. 1테더 혹은 1유에스디코인은 1달러를 추종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상화폐 시장 참여자들의 매매에 따라 시세가 변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연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USDT는 2022년 테라 사태 때 잠깐 0.95달러까지 시세가 하락했고, USDC는 2023년 SVB 파산 당시 0.88달러까지 급락한 이력이 있습니다. 물론 양쪽 모두 금세 정상으로 복귀했습니다. 평소엔 달러 가치를 매우 흡사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2014년 테더(Tether)에서 발행한 USDT가 원조격입니다. 이어 2018년 핀테크기업 서클(Circle)이 발행한 USDC이 코인베이스와 협력해 전통 금융으로 발을 넓히면서 확장성이 커졌습니다. 이밖에도 BUSD(Binance USD), TUSD(TrueUSD) 등과 같은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달러 가치를 따른다는 특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 투자 대상이 되기보다는, 다른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데 주로 이용됩니다. 바이낸스, 비트겟, 바이비트 등 주요 거래소에서 쓸 수 있습니다.
점유율에선 먼저 발행된 USDT가 월등한 1인자이지만 신뢰도 면에선 USDC가 나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달러라는 기축통화에 고정됐기에 코인의 가치를 담보할 자산이 중요한데, USDT의 경우 준비금에 대한 투명성 논란이 있고 온전한 외부감사를 받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USDC는 매달 회계감사를 받아 결과를 공개하고 있으며, 준비금도 대부분 미국채와 현금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USDT는 가상화폐 시장 안에서 주로 쓰이지만, USDC는 거래소 외에도 NFT마켓이나 기업결제, 일부 금융기관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두 대표는 국내 거래소에도 상장돼 있습니다. 빗썸엔 2023년 12월, 업비트엔 지난해 6월에 상장됐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두 코인 모두 달러 가치를 추종하므로 이론상 가격은 원달러환율과 동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빗썸과 업비트 모두 환율보다 10~20원 정도 높게 형성돼 있습니다.
7일 오후 1시30분 기준 서울 외국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1395.20원을 기록했습니다. 이 시각 업비트의 USDT 가격은 1409.5원, USDC는 1408.0원이었습니다. 빗썸에선 USDT가 1410원, USDC는 1409원입니다. 매매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중이어서 시세가 제각각이긴 했지만 원달러환율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세 차이에 대한 견해는 다양합니다. 실제 은행 등에서 달러를 환전하는 경우 발생하는 수수료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일종의 ‘김치 프리미엄’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 실물화폐와는 다른 효용성을 지목한 경우도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엔 ‘국경 없는 이동’의 가치가 반영됐다는 시각입니다.
국내에서 해외로 달러를 송금하는 경우 금융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1일 1만달러, 연간 10만달러의 한도가 설정돼 있습니다. 해외 유학생 또는 체제자에게 보내는 경우엔 연간 20만달러로 한도가 더 크지만 그 이상은 가져가거나 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USDT나 USDC를 이용한다면 그 이상 고액도 옮길 수 있습니다. 국내 거래소에서 매수한 뒤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에서 개설한 계좌 지갑으로 보내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거래소 거래가 가능한 국가라면 어디에서든 현금화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규제 사각지대인데요. 이 때문에 하루빨리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해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또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만큼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행은 아직 부정적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넘어 지급수단으로 널리 활용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쳐 금융시장 안정성이 위협받을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시장 충격이 발생했을 때 달러 고정이 풀렸던 것처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졌을 때 스테이블코인 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SDC 등이 세를 넓혀갈수록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