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습니다. 예전 다니던 직장에서 부서 워크샵을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이 워크샵이라지만, 실상은 술판입니다. 쓰린 속과 추스르기도 힘든 몸을 겨우 일으키면서 TV를 보니, 세상이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TV 하단 자막에는 빨간 바탕에 흰 글씨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느낌은 윤석열씨가 머리를 도리도리치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고 지껄인 것과 비슷합니다. 한마디로 “뭔 헛소리여”라는 도통 믿기지 않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스스로 등진 겁니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30분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발표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인 201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청와대 재임과 퇴임 시 찍었던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미공개 사진 40여 점을 공개했다. 사진은 2007년 12월 4일 청와대 본관에서 CNN과 인터뷰를 가진 후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가 장철영 제공)
미래를 보는 안목
2017년 5월이었을 겁니다. 그 때도 박근혜 파면으로 대통령 선거가 한창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관가가 밀집한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근무할 때 였습니다.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 가면 역대 해수부 장관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수부 6대 장관(2000년 8월~2001년 3월)입니다.
해수부 고위 관료들과 이야기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모신 적 있죠?
“그럼요”
-어떠셨어요?
“노통이 해수부장관 하시던 때가 우리나라 IT붐이 일던 때 였던 듯 한데, 프로그램 만드시는데도 관심이 많았죠. 관심만 많은 게 아니라 해수부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인터넷을 통해 적용하고 그랬어요”
-직접 만들고 했다구요?
“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인터넷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이것저것 프로그램 짜고 그러셨죠. 그것뿐 아니라 호기심이 많으셔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적용해보시고 그러고 했죠. 여튼 부지런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는 분이셨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이 열린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권양숙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김정숙 여사 등이 너럭바위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단)
이제서야 "노무현,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서민들에게 반감을 샀고, 기자실 폐쇄로 기자들과도 척을 졌습니다. 국익을 위해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당내에서도 반발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늘 고졸 출신 대통령이라고 기득권들은 비아냥댔고, 급기야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 전신 한나라당 주도 하에 탄핵까지 당합니다.
지금이야 ‘노무현, 노무현’ 하지만 당시 기득권 세력의 현란란 말에 국민들도 현혹돼 속된 표현으로 ‘동네 개가 씹던 껌’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위해 ‘국가비전 2030’을 세우며 미래의 대한민국을 걱정했고, 인구 소멸에 따른 지방 황폐화를 일찌감치 내다보고 국가의 근본 틀을 혁신하려 했던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 같지 않은 대통령’이 싸지른 대형사고에 한국은 다시 대선 물결에 빠져 휩싸여 있습니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 너나 할 것 없이 노무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데, 가슴 한켠이 울렁거립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정신이 번쩍 들 죽비를 내려치며 일갈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지 싶습니다. “다들 뭐하는 겁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오승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