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미·중 정상 통화에 이어 2차 고위급 무역회담 일정까지 속전속결로 확정. 미·중 관세협상의 물꼬는 다시 텄지만 앞날은 험난합니다. '희토류 공급 통제'라는 지렛대를 쥔 쪽은 여전히 중국인데요. 미국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선 '반도체 수출 통제 해제' 등 상응하는 대가를 통한 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희토류 패스트트랙' 꺼내든 중국…역으로 "최상의 제안 내놔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허리펑 부총리가 영국 정부 초청으로 8∼13일 영국을 방문하고, 그 기간 미국과 중미 경제·무역 협상 메커니즘 첫 회의를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허리펑 부총리는 중국의 경제 실세이자, 시진핑 심복입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는 '강경파'로 평가받는데요. 지난달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에 희토류 수출 재개를 약속했지만, 관세전쟁 휴전 후엔 수출 허가 승인을 일부러 지연시킨 당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선 희토류 부족에 따른 부품 수급 차질로 일부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추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는 부품 생산 거점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 반발하면서 통상합의 좌초 우려마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수출 지연은 중국 측 협상력을 극대화한 승부수가 됐습니다.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 공급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전략적 우위에 선 중국은 이제 희토류 공급을 놓고 역으로 '최상의 제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모양새입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엔 희토류 수출 허가를 '조건부'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변인은 "중국은 책임지는 강대국으로서 각국 우려를 고려해, 일정 수량의 수출 허가 신청을 승인했다"며 "관련국과 소통을 강화하고, 법규에 맞는 무역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럽연합(EU)을 향해선 희토류 수출통제와 관련해, 조건을 충족하는 신청 건에 대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을 구축해 승인을 가속하기를 원한다고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중국인 유학생 비자를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놨던 그는 "중국인 유학생을 맞이하는 건 우리의 명예"라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중국은 자동차 '빅3'(포드·제너럴모터스·스텔란티스)와 거래하는 희토류 공급 업자들에게 임시 수출 허가를 내준 걸로 보입니다. 수출 허가 중 일부는 유효기간이 6개월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허가된 희토류 수량·품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가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내주면 기술패권도 위기"…깊어지는 트럼프 고심
관건은 '트럼프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통화 후 "시 주석이 희토류 수출 재개에 동의했다"고만 했을 뿐, 이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후속 회담에서 '반도체 수출 통제 철회'를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걸로 예상됩니다.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 성장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정면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양 정상의 통화에선 '대만' 문제를 두고서도 이견이 드러났습니다.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할 거라고 밝혔다"는 중국 관영 매체 보도에도 트럼프 대통령 묵인했습니다.
결국 서로가 희토류 수출 통제와 대만 문제 등 각자의 관심 사항만 언급했고, 핵심 사안에선 이견이 여전하다는 분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대한 관세 유예 기간은 8월까지인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관세는 법원 판결로 일부 정당성을 잃은 상태입니다.
만약 미국이 중국에 대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수출 통제를 풀게 된다면, 미국이 주도해 온 '전략적 디커플링' 구상은 근간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이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국가안보와 공급망 주권을 지키기 위해 추진해온 핵심 전략이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 기조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과, 기술패권을 지키려는 안보 논리 사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셈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