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강자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양사의 임원 겸임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합병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국내 대표 OTT 출현이라는 숙원에 이재명 대통령도 무게감을 싣고 있는 중입니다. K-콘텐츠 진흥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연대를 통해 플랫폼 경쟁력을 키워 K-콘텐츠의 글로벌화 창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10일
CJ ENM(035760)과 티빙 임직원이 웨이브 임원 지위를 겸임하는 기업결합 신고에 대해 심의한 결과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습니다. 앞서 이들은 지난해 11월 웨이브 이사 8인 중 대표를 포함한 5인, 감사 1인을 CJ ENM과 티빙 임직원으로 지명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고, 같은 해 12월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습니다.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및 공정위의 국내 OTT 시장 수평결합 심사결과 요약 내용. (사진=뉴스토마토 및 공정위)
티빙과 웨이브 임원 겸임 방식의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공정위는 현행 요금제를 2026년 말까지 유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경쟁회사 간 결합으로 요금 인상을 우려한 까닭입니다. 통합 요금제를 낼 경우에도 현행 요금제와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하고, 이 역시 내년 말까지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티빙, 웨이브 관계자는 "경영 노하우와 플랫폼 역량을 결집해 이용자에게 다양한 콘텐츠와 향상된 시청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K-OTT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며 지속 가능한 K-콘텐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말했습니다.
합병 9부 능선은 넘었다…주요 주주 KT 동의 남아
공정위 조건부 승인 결정이 나면서 업계에서는 양사가 합병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위해 플랫폼 최대주주인 CJ ENM과
SK스퀘어(402340)가 지난 2023년 12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논의가 지지부진했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사업 협력이 가능해졌다는 평가입니다. OTT업계 관계자는 "합병을 위한 결합심사를 앞두고 사전심사를 통과한 격인데, 추후 시장 독점에 대한 우려 등은 덜어놓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티빙과 웨이브가 화학적 결합 이후 물리적으로 플랫폼을 통합해 운영하기 위해서는 주주 동의 등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다양한 주주 가운데
KT(030200) 동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KT는 지난 2022년 3월 구현모 전 대표 시절 CJ ENM과 콘텐츠 사업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이 파트너십을 통해 CJ ENM은 KT스튜디오지니 지분 9.09%를, KT스튜디오지니는 티빙 지분 13.5%를 확보했습니다. 현재 KT스튜디오지니는 CJ ENM에 이은 티빙의 2대 주주입니다. 지난 4월 김채희 KT 미디어부문장 전무는 KT그룹 미디어토크에서 "KT 의사와 무관하게 기업결합 신고가 들어갔고, 합병 전제의 길을 걷고 있다"며 "주주가치 측면에서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 독점력이 떨어져 가고 있는데 합병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의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합병시 넷플릭스 턱밑 추격…이재명 강조한 '우리 OTT' 성큼
사업적 이해관계에 따른 주주 간 협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규모 있는 K-OTT를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2·4위 사업자인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이뤄지면 1위 넷플릭스에 근접하게 됩니다. 모바일인덱스의 5월 OTT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보면 넷플릭스는 1450만명입니다. 티빙(716만명)과 웨이브(413만명)를 단순 합산하면 1129만명으로 집계됩니다.
양사 간 합병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말 경기도 평택 배다리생태공원에서 문화산업 진흥을 강조하며 규모 있는 OTT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우리 아이디어로 '폭삭 속았수다'를 만들어 (우리 플랫폼으로) 수출했으면 돈을 얼마나 벌었겠느냐. 넷플릭스에 다 주는 바람에 우리는 약간만 건졌다. OTT 같은 플랫폼도 정부가 지원해서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평택시 배다리생태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거대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에 국내 시장이 종속되는 현 상태를 끊어내려면 이에 맞설 만한 몸집을 갖춘 토종 OTT 플랫폼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콘텐츠 제작사들은 고공행진 중인 제작비를 대자본인 넷플릭스에 의존하고 있고, 넷플릭스만큼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한 국내 플랫폼들은 콘텐츠 유치가 힘들어져 수익을 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시장으로 공급·유통할 능력을 갖춘 토종 플랫폼이 없으면 국내 우수 콘텐츠는 해외 플랫폼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토종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내 안방용 콘텐츠를 장사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안정상 한국OTT포럼 회장은 "K-OTT 플랫폼은 K-콘텐츠를 동남아, 동유럽 등 글로벌로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동안 콘텐츠에 대한 지원과 달리 플랫폼으로는 정부 지원이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이번 합병을 계기로 자체적으로 자본력을 키우고, 정부의 금융지원이나 세액공제 확대로 플랫폼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