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교황님 가시지 말라고 두 손으로 꼭 잡았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부 전달해드렸죠. 저희 얘기를 들어주시고 끄덕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에요"
10·29 이태원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이상은양의 엄마 강선이씨, 아빠 이성환씨는 레오14세 교황을 알현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벅찬 마음이 가득하다면서 이 같이 전했습니다.
선이씨는 지난 9일 서울 합정동 토마토홀에서 진행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교황님과의 만남은 감동 그 자체였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선이씨는 "(교황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기대를 하기도 했다"면서도 "특별한 말씀은 없었지만 그 안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인 강선이·이성환씨 부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진행된 레오14세 교황의 첫 일반인 알현에서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사진=이성환씨 제공)
현지 도착까지도 '반신반의'…옐로티켓에 '깜짝'
선이씨와 성환씨의 레오14세 알현은 '신임 교황이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많은 언론에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숨어있었는데요.
시작은 선이·성환씨 부부가 상은양의 버킷리스트 실천을 위해 세례를 받았던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상은양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위한 교리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듬해인 2023년에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합니다. 딸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고 혼인 갱신식도 하게 된 것이죠.
같은해 말에는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지를 논의하던 중 이탈리아가 언급됐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 가는 것은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합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중 26명의 외국인도 있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리에서 이들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들은 곧장 교황청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교황청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잠깐의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짧은 문구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던 중 선이씨 부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후 레오14세 교황이 선출됐지만 교황청으로부터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는데요. 출국 당일까지도 교황님 알현이 가능할 지 모르는 상태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앞서 받았던 교황청의 회신 메일만 굳게 믿고 입장 티켓을 수령하는 줄을 섰습니다.
티켓만 받아도 다행이라 생각했던 선이씨 부부는 뭔가 특별함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간색 티켓을 손에 쥔 것과 달리 이들에게 배부된 티켓은 노란색이었기 때문이죠. 이때까지만 해도 단상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바리케이트 가장 앞줄 정도에 설 수 있겠지'라고 기대했다고 하는데요. 입장 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내가 되는 순간 '정말 다른 자리구나'라고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나요?" 묻고 경청 후 고개 끄덕…"그 자체로 감격"
선이씨는 혹시라도 준비한 내용을 모두 전하지 못할까봐 교황님과 가까이 서기 직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는데요.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보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는 레오14세에게 "세상을 떠난 상은이와 다른 158명의 영혼을 보살펴달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차분하게 모든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이어 성환씨가 들고 있던 현수막에 축복을 받고 이태원참사를 상징하는 별 배지와 보라색 리본을 교황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오14세는 별다른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지만 깊게 공감하는 듯한 눈빛을 건넸다고 하는데요. 선이·성환씨 부부는 "얘기를 들어주고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했다"고 회상합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에 대한 교황의 축복은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고 합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의 첫 일반인 알현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다보니 이들의 사연이 전세계로도 알려질 수 있게 돼 고맙고 감격스러웠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레오14세 교황이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에 축복을 해주고 있는 모습. (사진=이성환씨 제공)
"국민 생명 최우선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되길"
선이·성환씨 부부는 윤석열정부에서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던 이태원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재명정부에서는 조속히 이뤄지기를 희망했습니다.
성환씨는 "전 정부에서는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고 유가족과의 소통이나 브리핑이 전혀 없었다"면서 "이재명정부에서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 믿는다"고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 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태원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첫 발로 이태원참사 피해자를 위한 생활지원금 신청이 시작됐는데, 이 대통령은 "유가족과 피해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라"면서 "(특조위) 진상규명 활동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해달라"고도 지시했습니다.
선이·성환씨 부부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며 "더 좋은 대한민국,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