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올해 상반기 마지막 달인 지난달 수출액이 플러스(+)로 반등했지만 회복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여건은 아닙니다. 미국 관세 유예의 재발효 전 '물량 밀어내기' 여파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상반기 수출 누계로는 보합세에 멈췄으며 15대 주요 수출품목 중 10개 품목이 맥을 못 추고 있어 수출품목 편중 현상은 경기 낙관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상호 관세율 결정까지 도사리고 있어 하반기 수출 전선은 짙은 안갯속입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 동향'을 보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0.03% 감소한 3347억 달러에 머물렀다. (사진=뉴시스)
상호관세 전 '물량 밀어내기'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6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보다 4.3% 증가한 598억달러(80조7898억원)로 집계됐습니다. 표면상으로 보면 미 관세 조치에 따른 영향에도 역대 6월 중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겁니다.
우리나라 수출은 올 1월 10.1% 감소 이후 2월 0.4%, 3월 2.8%, 4월 3.7% 증가세를 보여 왔으나 5월엔 -1.3%를 맞은 바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다시 반등하면서 조업일 대비 역대 1위 수출액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15대 주력 수출 품목 중 반도체·자동차·컴퓨터 등 6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한 요인입니다. 특히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149억7000만달러)은 D램 고정가격 반등과 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출 호조세로 11.6% 증가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대미 수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2.3% 증가한 자동차 수출(63억달러)도 전기차 중심의 대EU(유럽연합) 수출 등 다른 지역 다변화 전략이 관세 영향을 피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더욱이 7월9일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한을 앞두고 '물량 밀어내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부산항의 처리 물량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4.5% 증가한 바 있습니다. 지난 4월 환적물량은 119만TEU로 8.7% 증가한 데다, 5월 관세 유예 조치로 중국, 북미향 화물의 조기 선적이 지속돼 왔습니다.
해운 물류업 관계자는 "미국 화주들이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한을 앞두고 연말 성수기 화물 물량까지 선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산항 환적물량의 경우 예년에 비해 상당 폭 증가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서가람 산업부 무역정책관은 반도체와 관련해 "지금 수요가 워낙 견조하고 단가도 높기 때문에 선수요의 영향보다 앞으로 계속 수출은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특정 품목 편중의 심화는 한계로 지목됩니다. 1~6월 상반기 수출을 보면, 3347억달러(-0.03%)로 전년 수준의 보합세를 맞고 있습니다. 수입(3069억달러)도 1.6% 줄면서 불황형 무역흑자(278억달러)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반기 15대 주요 수출품목 중 늘어난 수출 품목은 반도체(11.4%), 무선통신(8.5%), 컴퓨터(12.6%), 선박(18.8%), 바이오헬스(11.0%) 등 5개에 불과합니다.
대미 수출은 양대 수출품목인 자동차·일반기계 수출 부진으로 3.7% 감소한 622억달러에 그쳤습니다. 대중 수출의 경우 반도체 수출이 줄면서 4.6% 감소한 605억달러에 머물렀습니다. 상반기 9대 주요 지역 중 아세안(3.8%), EU(3.9%), 중동(3.3%), 인도(1.6%), 독립국가연합(CIS, 13.3%) 등 5개 지역은 증가세로 파악됐습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 동향'을 보면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0.03% 감소한 3347억 달러에 머물렀다. (사진=뉴시스)
협상실패 후 '보복 관세' 땐…'리스크' 증폭
주요 품목들은 관세 영향을 피하기 위한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관세협상 과정의 변수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어 불확실성만 짙은 형국입니다.
한국은행의 분석을 보면, 협상 실패를 가정해 세계 각국이 보복 관세로 대응할 경우 미국 경제의 타격은 다른 국가에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미 평균 관세율 25%포인트 인상 시 10년간 미국의 실질 수출이 19∼28% 감소하는 반면, EU·중국의 실질 수출은 각각 0~1.1%, 5~7% 감소 폭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미 1.3% 감소로 중국(-1.1%)·EU(-0.6%)보다 큰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이후 급격한 재편으로 중국 수입 의존 심화, 미국 수출 쏠림이 동시에 진행된 무역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양극화로 인한 공급망 리스크, 고용 악영향, 대미 통상압력 표적화, 거시경제 불안정성 등 다층적 위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정성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무역 다변화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경제외교·통상협력과 기업 차원에서의 지원책이 병행될 수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는 미·중 외 국가들과의 양자·다자 무역협정을 더 적극적으로 체결하고 기존 협정은 심화, 새로운 무역기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특히 2021년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추진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며 "CPTPP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12개 회원국 간 높은 수준의 개방을 표방하고 있어 미·중 무역의존도 완화와 공급망 안정화에 효과적"이라고 제언했습니다.
그는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지식재산, 환경, 노동 등 무역 전반의 영역을 아우르는 ‘골드 스탠더드’급 협정으로 평가되는 바, 향후 우리의 무역정책 방향성을 설정하는 핵심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가람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1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에서 올해 상반기 수출실적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