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단군 이래 최대의 이해충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5년 동안, 자신과 자신의 가족 건설사가 피감기관인 한국도로공사 등으로부터 수천억원의 공사를 따냈다면? 특히 야당 간사를 지낸 2년 동안 공사 수주금액이 많이 늘어났다면? 피감기관들은 그 의원과 그 의원 가족회사인 것을 모르고 수천억원의 공사를 수년 동안 맡겨온 것일까?
박덕흠 의원이 2019년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은 잊혀진 ‘이해충돌’의 끝판왕,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 얘기다. 전 신문사에 다니던 2020년 9월초, 알고 지내던 배후조종전문가 ㅇ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승훈님~. 진성준 의원실로부터 자료를 받았는데 건설업자 출신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위 야당 간사라는 권력을 이용해 피감기관의 공사 수천억원을 따냈더라고요. 이건 이해충돌을 넘어 완전히 뇌물이잖아요.” 점심께 자료를 받아보니 ㅇ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로 회사에 보고했고, 오후 편집회의 결과 다음날 1면 머리와 3면 해설기사가 잡혔다. 기자들이 제일 빡세다고 생각한다는 이른바 ‘1톱3박’이었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이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있던 최근 5년 동안, 박 의원과 가족들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들이 국토교통부와 국토부 산하기관들로부터 공사 수주와 신기술 사용료 명목으로 1천억여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은 “이해충돌을 넘어 박 의원 가족회사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국토부) 산하기관들의 공공연한 뇌물성 일감 몰아주기”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지난 15일 가족 기업들이 피감기관인 국토부·서울시 산하기관에서 400억여원 규모 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과 부패방지법·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바 있다.” 당시 내가 썼던 1면 톱기사의 리드다.
첫 보도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인터넷 상에선 비슷한 외모와 이력의 소유자인 이명박과 박덕흠을 합쳐 ‘이명박덕흠’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기도 했다. 편집국장은 나와 후배기자 2명으로 TF구성을 지시했다. 그날 이후 TF는 두 달 동안 박 의원 관련 단독기사를 쏟아냈다. 제목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단독] 국감때 도공 비리의혹 들춘 박덕흠…간사 되자 수백억 공사 수주
△박덕흠 일가 회사, 전국 지자체서도 480억대 공사 수주
△[단독] 박덕흠, 전문건설협회 회장 때 골프장 200억 비싸게 사 ‘착복’ 의혹
△박덕흠 일가 회사, 전국 지자체서도 480억대 공사 수주
△[단독] 박덕흠 ‘입찰비리 3진아웃’ 법안 무력화 주도했다
△건설업계 실소 자아낸 국민의힘 박덕흠 해명
△[단독] 박덕흠 일가 건설사, 입찰담합 적발돼 공정위 과징금 받았다
△박덕흠 의원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고발 사건 서울청 배당
△입찰담합 ‘원아웃’ 박덕흠, 국회 입성뒤 ‘삼진아웃법’ 반대
△[단독] 부실공사 처벌강화 법안도 “건설사 망하라는 거냐” 무산시킨 박덕흠
△입찰자격 완화로…박덕흠 일가 ‘266억 공사’ 따냈다
△‘선거법 위반’ 혼자 빠져나간 박덕흠…친형·직원들은 징역형
△[단독] “박덕흠이 담합 지시” 판결문 명시…검찰은 기소도 안했다
△‘최악의 이해충돌’ 박덕흠, 시민단체로부터 2차 고발당해
△[단독] 박덕흠 ‘부정채용’ 의혹도…“조카·지인 자녀 등 전문건설협회에 꽂아”
△[단독] 서류 미비로 165억 공사 포기? 박덕흠 일가 따내 ‘수상한 낙찰’
△시민단체 “박덕흠 의원 즉각 사퇴하라”…검경에 대대적 수사도 촉구
△박덕흠, 배임 의혹 제기한 전 전문건설협회장 고소 “허위사실로 무고”
△[단독] 10차례 열린 환노위 국감에 한번도 출석 안 한 박덕흠
△최악의 이해충돌 박덕흠, 국회 상임위 출석은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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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회자되던 '이명박덕흠' 이미지.
모아보니 많이도 썼다. 박 의원이 열받을 만하겠다. 그러니까 전화 좀 받으시지 그러셨어요? 취재 과정 동안 수 십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박 의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정도 논란과 의혹이면 의원직 사퇴가 답이었는데 박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것으로 퉁쳤다.
이윽고 그의 복수(?)가 시작됐다. 그해 12월, 그와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사들이 나를 상대로 총 3억원의 명예훼손 소승을 제기한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와 함께 언론사 대표도 소송 거는 것이 일반적인데, 박 의원과 가족기업들은 나만 콕 찍어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 임재훈 부장판사는 허위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6천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박 의원에게 패소 판결했다. 판결문을 보면, 임 부장판사는 “기사는 원고 관련 행보의 부적절성 및 이해상충 가능성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어 명백한 공익성이 인정된다. 전체 취지의 주된 부분이 객관적 사실의 토대 위에서 작성됐다.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 고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덕흠(왼쪽 가운데) 의원이 지난해 2월 충북 옥천군의 한 식당에서 열린 당선 축하연에 참석해 ‘당선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다. 당시는 총선 전이었다. 동양일보 제공
항소심은 같은 해 9월 열렸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재판장 이성철)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인한 손해 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한 박 의원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 법원 및 이 법원에 제출된 증거를 면밀히 살펴보더라도 피고의 이 사건 기사가 원고에 대한 허위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원고의 명예를 훼손한 위법한 기사라고 볼 수 없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앞서 박 의원 가족회사가 낸 별도의 소송도 원고인 이들 회사가 1, 2심 모두 패소해 2022년 1월 판결이 확정됐다. 그즈음 국민의힘을 탈당했던 박 의원은 15개월 만에 슬그머니 복당했다. 숱한 논란과 ‘난리부르스’가 벌어진 와중에도 검찰은 단 한 번도 박 의원을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봐주려고 작정을 한 것이었다.
아래는 당시 소송 결과를 듣고 미디어오늘과 짧게 인터뷰한 대목이다.
이번 소송결과를 두고 “너무도 당연해서 별 감흥이 없다. 다만, ‘단군 이래 최대의 이해충돌’ 의혹을 낳은 박덕흠 의원에 대해, 단 한 번의 출석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검찰과 경찰의 봐주기 수사가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오 기자는 “이런 봐주기 수사의 혜택으로 박 의원이 은근슬쩍 복당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박 의원 비리 의혹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이겼지만 졌고, 박 의원은 지고도 이겼다. 박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당선 축하 파티’에 참석해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여전히 남다른 예지력과 총기(?)를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박 의원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 그때는 이길 수 있을까. 그날까지 부디 나를 잊지 말아요.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