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기업들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면서 동시에 지주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의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의 마지노선으로 공익재단이 존재감을 드러내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익재단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됐더라도 오너 일가나 기업 집단의 사익이 아닌 공익적 목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본지 기획 시리즈에서는 유한양행 '유한재단', 녹십자그룹 '목암생명과학연구소', '미래나눔재단', '목암과학재단', 대웅 '대웅재단' '석천나눔재단', 종근당 '고촌재단', 한미그룹 '임성기재단' '가현문화재단' 등 5대 제약사가 소유한 공익재단이 그룹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특히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공익재단을 지렛대로 삼아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지적이 타당성을 갖는지도 검증했습니다. (편집자주)
녹십자그룹 본사. (사진=CG녹십자 제공)
녹십자그룹은 창업주 고 허영섭 회장의 아들 허은철
녹십자(006280) 대표이사 사장과 허용준
녹십자홀딩스(005250) 대표이사 사장 그리고 선대 회장의 동생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이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숙부-조카 공동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녹십자홀딩스 최대주주는 12.20%의 지분을 보유한 허일섭 회장이고, 이어 목암생명과학연구소가 8.72%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은철 대표와 허용준 대표는 각각 2.91%, 2.63%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죠. 현재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허일섭 회장의 장남 허진성 전무가 지난해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그룹의 투자 및 재무 회계를 총괄하는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지주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녹십자그룹의 후계 구도는 명확하지 않지만, 허일섭 회장 일가와 고 허영섭 회장 일가가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인 녹십자 경영에 같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녹십자그룹의 지배구조 핵심에는 목암생명과학연구소와 미래나눔재단, 목암과학장학재단 등 3개의 공익재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5대 제약사 중 가장 많은 공익재단을 보유하고 있는 녹십자그룹은 각각의 공익재단이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본연의 사업인 연구개발과 사회공헌 활동을 확장하고 있죠.
국내 1호 민간연구법인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지주사 2대 주주
지주사 녹십자홀딩스에 미치는 영향력은 2대 주주인 목암생명과학연구소(8.72%)가 가장 높습니다. 미래나눔재단(4.38%), 목암과학장학재단(2.10%) 등 3개의 공익재단이 보유한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은 총 15.20%에 달합니다. 이는 최대주주인 허일섭 회장(12.20%)보다 높습니다. 녹십자그룹은 크게 허일섭 회장 일가와 고 허영섭 회장 일가로 양분된 구조에서 공익법인이 경영권 변수를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셈이죠.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1984년 GC녹십자가 B형간염 백신 개발 성공을 통해 얻은 이익을 기금으로 출연해 설립한 국내 1호 순수 민간 연구법인입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민간 연구기관으로는 최초로 정부 승인을 받고 세계보건기구(WHO) 협력연구기관으로 지정됐죠.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주요 연구개발 성과는 세계 최초 유행성출혈열백신 한타박스(Hantavax)와 세계 두 번째 수두백신 수두박스(Suduvax) 개발에 성공한 것입니다.
2022년부터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신약 개발 연구소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특히 mRNA 치료제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 연구를 필두로 서울대병원 등 다수의 기관과 함께 난치성 희귀질환의 진단 및 분석용 AI 모델 개발, 치료용 화합물의 특성 예측 및 디자인, 단백질 또는 항체의 기능 향상을 위한 최적화 AI 모델 개발 등 다방면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고 있죠.
GC녹십자 관계자는 "지난 40여년 동안 감염병과 희귀병 치료제 개발을 통해 국가 보건의료와 보건 안보에 기여 해 온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최근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전문 연구소로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신약 개발 연구를 가속화하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 영입, 산업계와 학계 등 다양한 분야 간 연계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익목적사업 비중 2년 연속 90%대 유지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이사회는 총 11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허일섭 회장이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고 허은철 대표도 이사회 구성원에 올라 있습니다. 2년 연속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공익목적사업 금액을 늘렸습니다. 지난해 투자한 공익목적사업 비용은 42억7932만원으로 전년도 39억7476만원보다 7.7% 증가했습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전체 사업 비용 중 공익목적사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3.5%로 2년 연속 9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미래나눔재단은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을 영위하며 이사회 구성원은 총 7명입니다. 이사장직은 허용준 대표가 맡고 있으며, 그를 제외한 6명의 재단 이사는 모두 외부 인사 출신으로 구성됐습니다. 목암과학재단은 젊은 과학도들을 발굴하기 위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 위주로 운영되며 지난해 총 5억1224만원 사업비 전액이 공익목적사업으로 사용됐습니다.
기업 공익재단이 지주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보다 투명하고 독립적인 재단 운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녹십자그룹 측은 "연구소 운영의 독립성 보장하기 위해, 경영권과 연구소 운영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주요 정책이나 연구 방향의 설정에 있어 외부 석학 및 전문가 등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 등을 통해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