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자녀 성별, 정말 우연일까?

아들이나 딸만 태어나는 가족의 비밀

입력 : 2025-07-23 오전 10:20:25
한 가정에서 자녀의 성비는 동전 던지기처럼 50:50으로 수렴하지 않을 수 있다. (챗GPT 생성 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동전을 공정하게 던졌다고 가정할 때, 동전을 던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50대 50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이 현상은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라는 통계학 원리에 근거합니다. 
 
일반적으로 X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면 여자아이, Y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면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X나 Y 염색체를 운반하는 정자의 비율이 대체로 같아 이론적으로는 ‘동전 던지기’처럼 남녀 성별이 50대 50 확률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의 호르헤 차바로(Jorge Chavarro) 교수 연구팀은 이런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연구팀은 2025년 7월18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일부 가족에게는 특정 성별 자녀만 반복적으로 태어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생물학적 또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방대한 추적 자료와 유전체 분석의 결합
 
연구팀은 미국 '간호사 건강 연구(Nurse’s Health Study)' 자료를 바탕으로, 1956년부터 2015년까지 5만8000여명의 출산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의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건강 및 생식 정보를 수집해온 대표적인 역학조사로, 다수의 출산 및 가족 패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전체 가정 중 약 3분의 1은 자녀 모두가 같은 성별이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세 명, 네 명, 다섯 명의 자녀를 모두 같은 성별로 낳은 경우였습니다. 만약 자녀의 성별이 단순한 동전 던지기와 같은 확률로 결정된다면 드문 예외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실제 데이터에서는 예상보다 자주 관찰되었습니다. 
 
차바로 교수는 “개별 가족마다 특정 성별의 아이를 가질 ‘고유한 확률’이 있을 수 있다”고 밝히고 이런 현상은 유전적 차이, 생물학적 상태, 심지어 출산 시기 같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가족 단위를 떠나 인구 전체 같은 대규모 집단에서는 남녀 성비는 50대 50으로 평균화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산 시기와 여성의 나이도 남녀 성별에 작용 가능성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첫아이를 늦게 출산한 여성일수록 특정 성별의 자녀만을 낳을 확률이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생식 노화와 관련된 생리적 변화 때문으로 추론했습니다. 여성의 나이가 들수록 질 내 환경은 산성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정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X 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크기가 Y 정자보다 크고 산성 환경을 더 잘 견디는 완충 성분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여성의 나이가 들수록 생리 주기는 짧아지며, 이는 자궁경부나 나팔관 내 환경에 변화를 주어 Y 염색체를 지닌 정자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여성의 생리적 조건이 정자의 생존과 수정 성공률에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특정 성별의 자녀가 반복적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에도 ‘성별 편향’이 존재할까?
 
이번 연구는 생물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유전체 연관 분석(GWAS, Genome-Wide Association Study)도 병행했습니다. 연구팀은 일부 참가자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여 특정 성별의 자녀를 낳을 가능성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연관된 두 가지 유전자 변이를 찾아냈습니다. 하나는 모두 남자아이만을, 다른 하나는 모두 여자아이만을 낳는 가족들과 관련된 변이였습니다. 
 
이 유전자들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견은 유전적 요인이 자녀의 성별 결정에 일정 부분 작용할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회의적인 평가와 후속 과제
 
이번 연구는 기존의 ‘동전 던지기’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지만, 이에 대해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의 행동 유전학자 브렌던 지츠(Brendan Zietsch) 교수는 “우리는 1931년 이후 출생한 스웨덴 전체 인구를 포함한 훨씬 더 큰 표본을 바탕으로, 특정 가족이 남자아이 또는 여자아이만을 낳는 경향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며 이번 연구에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의 인구학자 니콜라 바르반(Nicola Barban) 교수도 “생물학적 요인만으로는 출산 패턴을 완전히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의 대상자의 95%가 백인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표본의 다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연구팀은 남성 측, 즉 배우자의 나이나 유전 정보 역시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고 보며, 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을 포함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자녀의 성별이 단순한 확률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정 가정에서는 실제로 ‘편향된 성별 출산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입니다.
자녀의 성별이 단순한 동전 던지기가 아닌, 생물학적 조건과 유전적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일 수 있다는 이번 연구는, 인간 생식의 복잡성과 신비함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남녀 성별 결정은 유전적 차이, 생물학적 상태, 심지어 출산 시기 같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미지=GettyImages)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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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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