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공대와 에모리대 의대 연구진이 쥐를 대상으로 한 공동 연구에서 치실을 이용한 백신 접종의 효과와 편의성이 입증됐다. (이미지=ChatGPT)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치실을 사용이나 가글이 백신 접종의 수단이 될지도 모릅니다. 최근 텍사스공대(Texas Tech University) 화학공학과 하빈더 길(Harvinder Gill) 교수와 에모리대(Emory University)의 미생물학 및 면역학 전문가인 리차드 컴팬스(Richard Compans) 교수 연구팀은 과학 저널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7월22일자에 발표한 연구를 통해 백신 접종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논문은 실험 쥐를 대상으로 치실을 이용해 잇몸 틈새(gingival sulcus)에 백신을 전달함으로써 점막 면역과 전신 면역을 동시에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른바 ‘치실 백신(floss-based vaccination)’ 기술입니다.
백신은 점막으로 전달하는 것이 유리
우리가 흔히 접종하는 백신은 경구 소아마비 백신을 제외하곤 대부분 근육이나 피하 주사로 투여됩니다. 하지만 많은 바이러스와 세균은 인체에 침입할 때 점막을 통해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독감이나 코로나19 같은 호흡기 감염병은 코와 입의 점막을 통해, 로타바이러스는 장 점막을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합니다. 그런데 기존 주사 백신은 이 점막 조직에서 방어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병원체가 들어오는 ‘출입문’에서 면역 방어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점막 백신 개발을 시도해왔습니다. 하지만 점막에는 매우 섬세하고 효과적인 천연 방어 기제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이 흡수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구강은 지속적인 침 분비와 음식물, 박테리아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백신 전달이 어려웠습니다.
백신 전달의 새로운 창 치은열구
연구진은 인간의 구강에서 특히 치은열구(gingival sulcus)라는 부위에 주목했습니다. 치은열구는 치아와 잇몸 사이에 있는 미세한 틈입니다. 이곳은 다른 점막 조직보다 면역세포가 많이 모여 있고, 점막을 통과한 물질이 림프절로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연구진은 바로 이 치은열구에 백신을 흡수시키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흔히 볼 수 있는 ‘치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치실은 문명국가에서 성인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흔한 위생용품입니다.
실험에서는 쥐의 치은열구에 백신이 코팅된 치실을 반복적으로 문질렀습니다. 이 치실에는 항원 단백질뿐만 아니라 면역 반응을 촉진하는 보조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항원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특수한 나노입자 기술을 활용해 항원을 치실에 입혔습니다. 이 나노입자는 점막을 통과해 면역세포와 쉽게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항원이 투여된 쥐는 구강 점막에 면역세포가 빠르게 모여들었고, 병원체가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강한 면역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동시에 백신 성분이 림프절을 통해 전신으로 전달되어, 혈액 내에서도 면역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28일 동안 50마리의 쥐를 대상으로 2주마다 코팅된 치실로 잇몸을 닦아 주고 4주 후에 실제 독감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결과, 치실로 백신을 흡수한 쥐는 모두 생존했지만, 백신을 받지 않은 쥐는 모두 죽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치실질을 한 지 2개월이 지난 뒤에도 쥐의 폐, 코, 분변, 비장에서 항체 수치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 강력한 면역 반응이 일어났음을 시사했습니다.
비교 실험에서 치실이 주사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나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주안점은 전통적인 백신 주사와 효과를 비교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동일한 항원을 쥐에게 두 방식으로 각각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치실 백신을 사용한 경우, 점막 내 면역세포의 반응이 훨씬 크고, 지속시간도 길었습니다. 또한 침과 혈액 속의 항체 농도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치실이 코로나19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에 매우 효과적인 백신 전달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이러스가 입이나 코의 점막을 통해 침투하자마자, 그곳에서 강력한 면역 반응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양치질로 면역 챙길 수 있는 시대 올 수도
이 연구가 제안하는 기술이 향후 임상시험에 성공할 경우,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백신을 투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동, 고령자, 주사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편리하고 유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더 나아가 치실뿐 아니라 가글제, 구강 스프레이, 치약 형태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양치하면서 면역도 함께 챙기는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백신은 주사”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며 치은열구를 활용해 면역학적으로 훨씬 효과적인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감염병이 국소 점막에서 시작되는 특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국소 면역 기반의 백신 전략은 차세대 팬데믹 대응에 핵심적인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연구에는 서울대 의대 이창현 교수도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치실은 전 세계적으로 매일 수억명이 사용하는 흔한 위생용품이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31%인 약 1억1000만명이 매일 치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GettyImages)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