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현대차와 기아가 글로벌 하이브리드 수요 확대에 힘입어 올해 2분기(4~6월)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미국발 관세 폭탄으로 수익성은 뒷걸음질 쳤습니다. 특히 관세 부과가 본격화하기 전 현지에 이미 들여온 무관세 차량인 비관세 재고가 소진되는 3분기(7~9월)부터는 관세 부담이 본격화되면서 실적 충격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여기에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경우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일본차는 숨통이 트인 반면, 한·미 간 협상은 답보 상태에 머물면서 한국차만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아는 25일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4.1% 줄어든 2조764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날 현대차도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8% 줄어든 3조6016억원에 그쳤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하며, 실적 후퇴를 맞았습니다. 두 회사의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단연 미국발 고율 관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모든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관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는 미국에서 2만2125달러(약 3023만원)부터 팔리는 소형 세단입니다. 한국 울산공장에서 생산해 배에 실려 미국에 도착한 아반떼는 지난 4월3일부터 25% 관세가 붙어, 대당 1000만원 이상의 관세가 물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2분기에는 일정 수준의 비관세 재고로 관세 여파 충격을 완화했지만, 이 물량은 이달 말 동이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고가 모두 바닥이 나는 3분기부터는 미국 내 판매 차량 대부분이 고율 관세 적용 대상이 돼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기아는 25일 실적 발표 직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7860억원의 관세 영향을 받았다”면서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현대차 역시 컨콜에서 “8282억원의 마이너스 관세 영향이 있었지만, 아직 풀 쿼터(전 분기)로 영향 받지 않았다”며 “3분기에는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관세뿐만 아니라 전기차 정책 변화도 부담 요인입니다. 이달 4일부터 미국에서 시행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은 전기차 세액공제를 비롯한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들을 대거 폐지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는 더 이상 미국 내에서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해당 제도는 오는 9월 종료됩니다. 이후 미국 내 전기차 수요 위축과 함께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판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경제인연합회는 OBBBA 영향으로 한국 기업의 미 시장 전기차 판매량은 연간 최대 4만5828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19억5508만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12만3861대)의 약 37%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사진=뉴시스)
일본과의 무역 협상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최근 미일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도요타, 혼다 등 일본차에는 15%의 관세만 부과되게 됐습니다. 현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기아로선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더 불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됐습니다. 실제 쏘나타의 판매 가격은 2만6900달러(약 3697만4050원·기본트림 기준)로 경쟁 중인 도요타 캠리(2만8400달러)·혼다 어코드(2만9390달러)와 비교해 약 5.3%~8.5% 저렴합니다. 그런데 미일 관세 협상 타결로 일본 차 관세가 한국차와 똑같은 25%에서 15%로 떨어진 관세를 그대로 가격에 반영할 경우 충남 아산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쏘나타는 오히려 비싼 차가 돼 가격경쟁력이 약화됩니다.
자동차 일부 부품에도 25%의 고율 관세가 지난 5월부터 매겨지면서 부품 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점도 악재입니다. 부품 관세 일부를 상쇄해 주는 ‘관세 상쇄용 크레디트(금액)’가 도입되긴 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현대차는 전날 컨콜에서 2분기 기준 관세 비용 중 20%는 부품 관세가 차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차와 기아는 상반기까지는 비관세 재고로 관세 충격을 완화했지만, 하반기에는 직접적인 관세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관세라는 외부요인을 기본적인 체력이나 이익창출 능력을 더욱 더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 부사장도 “시장 불확실성으로 정확한 금액은 밝히기 어렵지만, 하반기엔 관세 영향이 분명히 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 비중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기아는 미국에서는 유연 생산 운영을 통해 시장 수요 및 규제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 볼륨 RV 차종의 하이브리드 공급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지속 제고한다는 방침입니다. 김승준 재경본부장은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은 전적으로 미국 내에 공급하면서 대응해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단기간 내 전면 대응은 어렵다는 점에서 하반기 실적 방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