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치명적 펜타닐 밀매 중단법'(HALT Fentanyl Act)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에 있어 3500억달러(약 487조원)의 대미 투자에 합의하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다만 '미국산 농산물 개방'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달리 우리 정부는 추가적인 쌀·소고기 개방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다소 입장 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자동차 관세도 15%…"큰 고비 넘겨"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협상은 우리 국민주권정부의 첫 통상 분야 과제였다"며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백악관에서 우리 정부 무역 협상단을 만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선택하는 투자를 위해 3500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할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는 일본·유럽연합(EU)이 미국과 타결한 15% 상호관세와 동일한 관세율입니다.
이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 대표단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30분께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습니다.
당초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4000억달러(약 552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미국은 앞서 일본과 무역 협상에서 총 5500억달러(약 759조원)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는 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할 때 한국 입장에서 선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한미 조선 협력 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은 1000억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나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는 15%로 적용됩니다. 김 실장은 "12.5%로 최선을 다해 주장했으나 거기까지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 이렇게 해서 그것을 (12.5%를 고수)하려고 하면 여러 틀이 흔들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12.5%의 자동차 관세를 주장한 건, 한·미 무역협정(FTA)에 따른 것으로 일본의 경우 이미 2.5%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는 영향이기도 합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펀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인데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대미 투자펀드 수익 중 90%를 미국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 실장은 "펀드 구조가 특정되지 않아 이익금 배분을 추론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김 실장은 이번 협상 타결에 있어 정부의 역할에 대해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상호 호혜적 결과를 도출한다는 원칙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추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도 평가했습니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논란이 된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의 내용은 이번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김 실장은 온플법에 대해 "협상 초기에는 논의가 있었지만, 최종 테이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도 "통상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을 하며 출입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농산물 개방"…김용범 "추가 개방 없어"
문제는 우리 정부가 설정했던 농축산물에 대한 '레드라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에 완전히 개방하기로 하고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겠다고 합의했다"라고 적었습니다.
반면 김 실장은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쇠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우리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우리 정부의 발표에 다소 괴리가 있는 셈인데요. 앞서 우리 정부는 식량 안보 문제인 농산물 대신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작물 수입 확대' 카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한편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주 뒤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김 실장은 "아직 구체적인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곧 한미 외교 라인을 통해 협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