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위징의 간언과 구치소의 속옷

입력 : 2025-08-12 오전 6:00:00
책과 담을 쌓고 지낸 지 오래입니다. 휴대전화 하나면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굳이 누워 읽으면 팔 아프고, 앉아서 보려면 허리 아프고, 엎드려 읽으려면 눈 아픈 책 읽기는 귀찮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2024년 4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2023년 기준)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서는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으로 앞선 조사가 이뤄진 2021년보다 0.6권 줄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락가락하는 휴일 낮. 집 안을 둘러보다 분명 거기에 있었지만 ‘있는 줄도 몰랐던’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장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나 봅니다. 이것저것 보던 가운데 양장본으로 정돈된 책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관정요』. 중국의 명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당태종의 23년에 걸친 치세 동안 위징 등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입니다. 당태종의 연호가 정관(貞觀), 정요(政要)는 곧은 정치의 요점, 즉 나라를 다스릴 때 핵심이 되는 요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문답 형식으로 신하들과 대화를 통해 바른 정치를 이끌어가야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두드러진 대목은 ‘간언’입니다. 신하의 직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간언도 간언 나름인데, 당태종을 뼈 때리게 하는 신하는 ‘위징’입니다.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말이 위징과 당태종의 대화에서 나옵니다. 나라든 회사든 새로 세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다른 신하들 모두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세운 당태종의 창업을 치켜세울 때 위징만이 지키는 것이 어려우니, 아첨이나 간사한 말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 똑바로 챙기고 군주의 일에 전념하라는 충언을 합니다. 
 
위징은 원래 당태종이 황제로 오르기 위한 쿠데타인 ‘현무문의 난’을 일으킬 당시 반대편에 섰던 인물입니다. 쿠데타가 성공한 뒤 반대편에 섰던 신하를 살려둔 당태종도 보통은 아니지만, 위징도 그만큼 강직함을 갖춘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을 겁니다. 
 
위징의 직언은 당태종도 어지간히 참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당태종이 씩씩거리며 황후에게 “위징 이놈이 허구한 날 공개 석상에서 내가 잘못했다는 말만 하니. 죽여버리고 말 거요”라고 합니다. 그러자 황후가 의관을 바르게 고쳐 입고, 당태종에게 큰절을 합니다. 
 
당태종이 놀라서 바라보고 있으니, 황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옛부터 성군이 아니면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바른말 하는 신하가 폐하 곁에 있다는 것은 폐하가 성군이라는 소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리는 것입니다”고 합니다. 
 
이에 당태종은 깨닫는 바가 있어 사치와 교만을 더욱 멀리하고 정치에 힘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군 같은 당태종의 오점으로 지목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고구려 원정입니다. 위징이 사망한 뒤 고구려에 대해 군사를 일으킨 당태종은 결국 패하고, 패잔병을 거느리고 돌아온 지 불과 2년 뒤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신당서』 '위징열전' 편에서 당태종은 “위징이 살아 있기만 했어도 고구려 원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합니다. 
 
『정관정요』의 내용은 두툼해도 핵심은 간단합니다. 인재 중시와 간언의 적극적인 수용,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통치자의 도덕적 원칙, 전쟁을 통한 확장보다 내치 강화와 평화 유지가 국가 번영의 핵심이라는 내용입니다. 
윤석열씨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 가운데서도 앞서 말했지만, ‘간언’이 통치자가 받아들여야 할 핵심 요건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은 일반 필부들도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분노가 치미는데,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지존’에게 간언을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통 아첨을 해서 오래 붙어 있거나 아니면 입을 그저 닫고 마는 게 인간사일 겁니다. 
 
윤석열과 김건희, 전직 대통령 부부에 대한 특검 수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수사 상황을 보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툭하면 쏟아지는 격노에 간언은 오갈 데 없고, 참모들은 모두 입을 닫았습니다. 그 결과는 구치소에서 속옷 바람으로 바닥에 누워 수사 받으러 가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작태, 의자에 앉아 버티는 와중에 10명이 들어 옮기려다 바닥에 떨어진 뒤 아프다고 징징대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꼴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 입바른 소리는 누구든 귀에 거슬리는 것을 넘어 살의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들어야 합니다. 요즘 시대에 위징 같은 인물이 있을까마는, 통치자가 간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숨죽였던 위징들이 곳곳에서 나올 겁니다. 
 
수많은 위징들이 활개 치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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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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