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12·3 계엄에 가담·방조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2일 내란 특검에 세 번째로 소환됩니다. 앞서 19일 두 번째 소환 땐 16시간이나 조사를 받고 이튿날(20일) 새벽에 귀가한 바 있습니다. 사실상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는 분석입니다. 정통 관료로서 역대 정권마다 중용된,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됐던 한 전 총리는 결국 '계엄의 늪'에 빠져 몰락, 불명예스러운 말년을 보내야 할 판입니다.
내란 특검은 20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한덕수 전 총리를 22일 다시 소환키로 했습니다. 7월2일 1차 조사, 8월19일 2차 조사에 이어 세 번째로 특검에 나가는 겁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윤석열씨의 12·3 계엄에 동조했다고 의심합니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특검은 계엄 당일 밤 그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계엄 선포 문건을 놓고 대화하는 대통령실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결국 특검이 전날 그를 16시간이나 조사해놓고도 세 번째로 소환하는 건 구속영장 청구 직전 법리 검토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걸로 풀이됩니다. 이르면 이번 주 내 영장을 신청하겠다는 겁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 특검 사무실에 12·3 비상계엄 방조 등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3일 밤 윤씨에게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을 건의했습니다. 국무총리는 단순 국무위원이 아닌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는 헌법상 기관이며, 대통령의 제1보좌 기관입니다. 이에 특검은 그가 계엄의 밤에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게 계엄에 적극 동조하려는 것인지, 계엄을 저지하려는 취지였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전 총리에 관한 법리 판단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박지영 특검보도 이날 서울고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가와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을 총리가 보좌했는지가 쟁점"이라고 했습니다.
특검은 한 전 총리를 3차까지 조사한 이후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걸로 관측됩니다. 법원이 영장을 허락한다면, 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에 이어 윤석열정부의 국무위원이 내란 특검 수사로 구속된 세 번째 사례가 됩니다.
2번 총리 지내고 정권마다 중용된 엘리트 관료의 몰락
한 전 총리는 보수·진보 정부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을 넘나들며 70년 평생을 엘리트 관료로 살아왔습니다. 국무총리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세 번이나 소환되고, 그에 관해서 '구속영장 청구 하느냐, 마느냐'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한 전 총리 인생의 몰락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한 전 총리는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지냈습니다. 국민의정부에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참여정부 땐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총리 등을 잇따라 맡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사람이 참 양종(품성 좋은 사람)이야"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9년 2월 이명부정부가 들어섰을 땐 주미대사로 임명됐고, 2022년 5월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뒤엔 또 한 번 총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윤석열정부 유일한 총리입니다. 정권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겁니다.
그러나 논란도 많았습니다. 특히 2009년 5월 총리로서 보좌했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땐 장례식에도 불참하며 '참여정부 사람'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관료에서 퇴직한 후 김앤장에 취업, 5년 동안 20억원의 고문료를 받은 게 드러나며 처신이 옳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올해 4월4일 윤석열씨가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된 후 조기 대선 국면에선 국민의힘 잠룡으로 부상했지만, 김문수 후보와의 싸움에서 명분과 실리에서 모두 밀려 결국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겁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 특검 사무실에서 12·3 비상계엄 방조 등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상징적인 일은 지난 5월2일입니다. 이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사회 통합을 강조하고 호남 출신으로서 지역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을 막아선 시민들로부터 20분 동안 항의를 받고 끝내 묘역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시민들에게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껴야 합니다. 같이 뭉쳐야 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자기 본적이 전북 전주라는 걸 언급, 시민들로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러나 호남 출신이면서도 보수 정부에서 봉직하다 계엄에까지 연루됐다는 이중성만 부각됐습니다.
한 전 총리의 구속 여부는 단순 신병 문제를 넘어, 보수·진보 정부를 오가며 극적으로 변신한 '영혼 없는 관료'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화려했던 경력도 사실상 불명예로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