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A- 등급의 여천NCC 회사채가 한때 7000원대까지 급락했습니다. 내년 3월 만기가 예정된 회사채의 예상 수익률이 15%에 육박합니다. 수익은 달콤해 보이지만 아직 매수하기엔 이릅니다. 정부와 기업의 구조조정 계획이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 내용에 따라 채권 가치가 반값으로 뚝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NCC 대수술 중
26일 한국거래소에서 여천NCC84-2회 채권은 8678원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전일보다 148원이나 반등했지만 채권 액면가 1만원에서는 크게 하락한 상황입니다. 하루 전엔 장중 7700원까지 크게 밀렸으며, 일주일 전인 13일엔 최저가인 장중 7000원을 찍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NCC 캐파를 최대 25% 감축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날입니다.
여천NCC 채권의 급락은 NCC(나프타분해설비) 업계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NCC 공급 과잉이 전 세계 유화업계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설비 감축이 진행 중인데요. 글로벌 생산량 1위인 중국이 구조조정을 위한 실사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하나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 유관기관들이 6~8개 핵심 생산 지역을 집중 실사 중입니다. 그 결과를 9월 초에 1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무원이 구체적인 생산 축소 방안을 제시하고 산업정보화부가 세부 시행 방안을 마련하게 됩니다.
국무원 발표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120일 안에 폐쇄 일정을 확정 또는 설비 개조에 착수해야 하고, 180일 내 공정의 50%를 달성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엔 실제로 설비 폐쇄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로 NCC 270만~370만톤을 감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국내 생산량의 19~26%, 전 세계 생산량의 1~1.6% 규모입니다. 여기에 중국의 구조조정 예상 규모가 전 세계 캐파의 2~3%이므로 구조조정 완료 시 글로벌 공급 과잉은 크게 완화될 전망입니다.
이에 NCC 업계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으나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회복세가 뚜렷합니다. 반면 이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가격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여천NCC의 경우 낙폭이 두드러집니다. 회사 지분을 절반씩 보유, 함께 지배하고 있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채권자들의 우려가 큰 탓입니다. 특히 이들 중 한 곳이 워크아웃을 선호한다는 말까지 퍼져 채권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7개월 보유 시 15%’ 아직은 안 돼
현재 장내 채권시장에는 여천NCC78, 여천NCC73-2, 여천NCC84-1, 여천NCC84-2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중 여천NCC84-2를 제외한 3종 회사채는 모두 내년에 만기가 예정돼 있습니다.
여천NCC84-2회 채권은 지난해 10월17일 300억원 규모로 발행한 3년 만기 회사채로 2027년 10월에 만기가 돌아옵니다. 표면이율은 5.80%이지만 채권 가격이 급락해 채권수익률은 13%를 웃도는 상황입니다. 여천NCC73-2회와 78회 채권의 경우 내년 3월이 만기인데도 14%대 수익률이 예상됩니다. 이렇게까지 채권 가격이 급락한 것은 정상적인 상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탓입니다.
현재 여천NCC의 재무 상태는 매우 열악합니다. 6월 말 기준 부채가 2조3569억원, 자본총계는 6972억원인데 3902억원 이익결손 상태로 현금이 부족합니다. 업황이 나빠 이익은커녕 쌓인 돈을 까먹고 있습니다. 이번 상반기에도 2222억원 적자를 보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은 차환 발행하거나 증자해서 갚아야 합니다. 올해 초 이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1000억원을 지원했고, 7월에도 1500억원씩 추가 출자했습니다. 당시 DL케미칼이 추가 출자를 거부했다가 정부가 나서면서 동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여천NCC의 재무상태가 악화된 만큼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말 ‘A(부정적)’에서 ‘A-(부정적)’로 내린 지 8개월 만에 또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여천NCC 채권은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향되면 400억원, 두 단계 하락 시 300억원 등 총 7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즉시 상환해야 하는 조항이 붙어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발행금리를 높인들 차환 발행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정부가 칼을 댄 이상 어떤 식으로든 구조조정이 진행될 텐데 그 과정에서 여천NCC의 미래와 채권 상환 계획이 어떻게 급변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관들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금융기관들과 협의를 통해 상환 비율과 시기 등을 논의하지만 개인은 워크아웃 협약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이 결과가 개인 채권자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채권자집회에서 채권 보유자 절대다수가 뜻을 모은다면 해당 채권만 단독 행동을 할 수도 있으나 현실성이 낮습니다.
4종 채권 모두 보름여 간의 혼란을 듣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아직은 눈치 보기 단계입니다. 채권 구조조정 방안과 워크아웃 협약 내용이 나오거나 대주주들의 추가 출자 계획 또는 자산 매각 방안이라도 발표돼야 합니다. 지금으로선 채권가격이 급락해 예상 수익률이 20%에 이른다고 해도 투자 가능 여부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여천NCC 제1사업장. (사진=여천NCC)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