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와 글로벌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벼랑 끝 위기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구조조정 개편안 발표와 특별법 발의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업계를 둘러싼 외부 악재는 오히려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중국이 최근 자국 내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 생산기지 완성을 공식화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와 합작으로 추진 중인 국내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 ‘샤힌 프로젝트’도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중국·중동발 공급과잉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울산에 위치한 온산 석유화학단지.(사진=뉴시스)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는 국내 석화업계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울산 중구)이 업황 침체를 겪고 있는 석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26일 대표 발의했습니다.
특별법에는 △연구개발·설비투자 보조금 △전기요금 감면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기업결합 규제 완화 △사업재편 과정 단기 유동성 지원 등이 담겼습니다. 연계된 조특법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신규 설비투자 세액공제(최대 30%) △합병 과정 중복자산 매각 차익 과세 특례 △노후·비효율 설비 처분 시 양도차익 과세 부담 완화 등입니다.
앞서 지난 20일 정부는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최대 370만톤(t) 규모의 나프타 분해시설(NCC) 감축을 업계 자율에 맡기되,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에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참여하지 않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처럼 정치권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 석화업계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우려하던 중국과 중동발 공급과잉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해양석유그룹(CNOOC)은 저장성 닝보 다셰섬에서 ‘석유화학·정유 일체화 프로젝트’ 가동에 성공했다고 지난 22일 발표했습니다. 중국 최대 규모의 세계적 석화산업 기지 건설이 완성됐다는 게 중하이정유 측 설명입니다. 이번에 가동에 들어간 핵심 설비인 연 320만t급 촉매 분해장치는 범용 제품인 고분자급 에틸렌·프로필렌을 연간 120만t 생산할 수 있습니다.
앞서 중국은 정부의 주도 하에 2020년부터 석유화학 자급을 앞세워 대규모 설비 증설에 나선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0년 3227만톤(t)에서 지난해 5440만t으로 급등해 전 세계 증설 물량의 약 64%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추가 증설에 나서며 공급과잉 우려를 한층 더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도 순항 중입니다. 총 9조원을 투입해 울산에 석유화학 설비를 구축하는 역점 사업으로, 국내 석화 투자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올해 8월 초 기준 공정률은 79.8%로, 2026년 상반기 기계적 완공과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한 시운전을 계획 중입니다.
샤힌 프로젝트의 핵심은 ‘원유 직투입 석유화학 공법(COTC)’ 도입입니다. 기존 나프타 기반 생산 체계와 달리 원유를 직접 석화 제품으로 전환해 비용과 효율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모회사 사우디 아람코로부터 원유를 직접 공급받으면서 원재료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샤힌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연간 약 320만t의 석화 제품이 추가로 생산되며, 연간 180만t의 에틸렌이 공급될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치권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범용 제품 시장의 공급 과잉 심화에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나서주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업계의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전환을 서두르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