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UCLA 연구진이 바꿔온 암 치료의 지형 ①

입력 : 2025-09-05 오전 9:39:11
암 정복의 길을 연 UCLA 교수들. 왼쪽부터 데니스 슬라몬 교수, 미카엘 융 교수, 리차드 핀 교수. (사진=UCLA)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암은 여전히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질환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해마다 약 1000만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수십 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연구와 신약 개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암은 ‘완치가 어려운 질병’이라는 두려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는 지난 수십 년간 암 치료의 최전선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왔습니다. 최근 UCLA 뉴스룸은 이 대학 연구진이 개척한 성과를 정리한 특집기사를 발표했는데, UCLA가 암 극복에 기여한 여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기획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특집기사를 토대로, 분자 수준에서 암세포를 겨냥하는 표적치료제부터 환자의 삶의 질을 지키는 신약까지, UCLA 연구진이 어떻게 암 치료의 판도를 바꾸어 왔는지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분자 수준에서 암을 겨냥하다: 허셉틴(Herceptin)
 
1990년대 초, HER2 양성 유방암은 가장 치명적인 진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3~5년에 불과했습니다. UCLA 의대 데이비드 게펜 의대의 데니스 슬라몬(Dennis Slamon)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분자 수준에서 암세포를 해부했습니다.
 
그들은 암세포의 특정한 ‘고장 난 스위치(HER2 유전자 과발현)’를 확인하고, 정상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표적을 향해 항체를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1998년 상용화된 허셉틴(트라스투주맙, trastuzumab)은 암세포만을 정밀 타격하는 ‘표적치료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허셉틴은 이후 수백만명의 여성 환자들에게 생존의 시간을 안겨주었고, 분자 표적치료(molecular targeted therapy)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습니다. 기존의 화학요법이 정상 세포까지 무차별 공격하던 것과 달리, 허셉틴은 암세포만을 겨냥하는 ‘정밀 의학(precision medicine)’의 시작이었습니다. 
 
3차원 이미지를 생성하는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된 유방암 세포. (사진=Bruce Wetzel and Harry Schaefer, National Cancer Institut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전립선암 환자에게 시간을 선물하다: 엑스탄디(Xtandi)와 얼리다(Erleada)
 
피부암 다음으로 미국 남성에게 흔한 암은 전립선암입니다. 미국암학회에 따르면 남성 8명 중 1명은 평생 전립선암을 경험합니다. UCLA 화학과 미카엘 융(Michael Jung) 교수와 당시 UCLA 의대의 찰스 소여스(Charles Sawyers) 교수는 전립선암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FDA 승인을 받은 엑스탄디(엔잘루타마이드, enzalutamide)는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에게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2018년 승인된 얼리다(아팔루타마이드, apalutamide)는 임상 3상 시험이 조기 중단될 정도로 놀라운 효과를 보였습니다. 시험은 환자에게 전이가 시작되기 전 ‘건강한 2년’을 추가로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생존 연장이 아니라,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춘 혁신적 성과였습니다. 
 
유기체 배양에서 유래한 야성형 인간 전립선 세포. (사진=National Cancer Institut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새로운 계열의 치료제를 연 길: 입랜스(Ibrance)
 
2000년대 중반, UCLA 존슨 종합암센터의 슬래몬 교수와 리차드 핀(Richard Finn) 교수는 화이자가 개발하던 화합물 PD-0332991을 주목했습니다. 당시 많은 연구자들은 큰 가능성을 보지 못했지만, UCLA 연구진은 세포 주기 조절 단백질(CDK4/6) 억제를 통한 암세포 분열 억제에 착안했습니다. 
 
이 약물은 결국 입랜스(팔보시클립, palbociclib)라는 이름으로 승인되었고,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HR+)·HER2 음성(HER2-) 유방암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입랜스는 단독요법이 아닌 호르몬 치료제와 병용 사용될 때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며, CDK4/6 억제제 계열 약물이라는 새로운 치료 영역을 열어젖혔습니다. 
 
현재는 진행성 유방암뿐 아니라 조기 유방암 환자 치료에서도 효과가 입증되며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인간 유방암 세포의 3차원 배양, DNA는 파란색으로 염색되고 세포 표면막의 단백질은 녹색으로 염색됨. (사진=NCI Center for Cancer Research, National Cancer Institut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UCLA 연구자들의 성과는 단순히 약물 개발을 넘어, 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허셉틴은 ‘분자 표적치료’의 효시로, 엑스탄디·얼리다는 ‘삶의 질 중심’ 치료 체계의 확립으로, 입랜스는 ‘세포 주기 억제’라는 새로운 치료 축을 개척한 것입니다. 이들 성과는 UCLA가 전 세계 암 연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환자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치료제’라는 목표를 실현한 사례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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