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제주 구좌읍을 들어서자, 오랜 돌담과 탁 트인 바다가 하나둘 눈에 들어옵니다. 93년 전 일제 만행에 맞서 싸웠던 세화마을은 오늘날 제주 구좌 햇살을 담은 당근 주스와 노트북이 어울리는 명소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바로 '세회 질그랭이 워케이션(Workation·휴가지 원격 근무)' 센터가 지역소멸위기와 도시-농어촌 단절을 동시에 풀어가는 실험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도는 빈집 재생과 더불어 아기유니콘 기업까지 성장할 수 있는 농업정책의 접점지이기도 합니다. 외양간이 달린 빈집을 새로운 카페·숙박 모델로 재탄생시킨 포레스트제이카우세드와 농식품 모태펀드 투자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미스터밀크 수출기업이 대표적입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과 신세호 미스터밀크 대표, 마이크 조셉 리어던 이시돌 농촌사업개발협회 이사장 등이 지난 3일 제주 한림 금악에 위치한 미스터밀크에서 농식품 모태펀드 지원 성과 및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시드머니 실험장 '성장기업'
농식품 모태펀드는 각각의 시도를 통해 농업과 농촌을 새로운 각도로 재해석할 수 있게 하는 성장 기반의 마중물로 지목됩니다. 민간과 정부출자를 결합한 농식품 모태펀드는 첫 도입 후 현행 123개 자펀드를 결성, 총 2조188억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현재까지 모태펀드를 지원받은 기업은 711곳으로 농식품 분야만 556곳(1조1805억원 투자)에 달합니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는 2832억5000만원 규모의 농식품투자조합(자펀드) 운용사 12개사가 선정된 상태입니다. 이중 제주 성이시돌 목장의 원유를 바탕으로 '한국판 하겐다즈'를 꿈꾸는 미스터밀크 기업의 경우 모태펀드 마중물을 통해 싱가포르 현지 기업과 시범 납품 성과를 올린 바 있습니다.
농식품부가 투자한 모태펀드는 2019~2022년 동안 35억원 남짓. 공장 구축 후 2023년부터 본격 생산에 나서면서 모태펀드 종잣돈으로도 해외 수출 가능성을 엿 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직 아기유니콘인 해당 기업은 상징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해외 수출 성과를 확대하기 위한 대량생산 설비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신세호 대표는 "일단 테스트 MOQ(Minimum Order Quantity·최소 주문 수량)는 수출됐다. 업체와 독점 계약을 통해 최소 10만달러 이상의 계약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몇 군데 계약으로 경과,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메이저 바이어들에게 제안받은 것이 있는데 대량생산 설비를 추가해야 하는 물량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모태펀드나 론을 통해 추가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공장 설비와 부자재 시설 투자에 소요되는 예상 비용은 단기 20억원 규모로 후속 투자 중 추가적인 모태펀드 요청도 검토 중입니다. 그는 20억원 투자가 600억원 규모의 성장 확대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과 방수연 포레스트 제이 대표 및 관계자들이 지난 3일 서귀포시 화순리 마을에 위치한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에서 설명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카페·숙소 등 빈집재생…오피스까지
기존 농업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등 지역 관광·청년 창업으로 연결한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 사례는 다양한 모태펀드 투자 모델의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이곳은 감귤 농장 내 창고 빈집을 카페 본관으로 리모델링했으며 외양간은 카페 별관으로 꾸민 신상 카페입니다. 특별한 홍보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면서 제주를 찾게 하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이 30억원을 들여 직접 투자한 공간이나 농촌 빈집을 재생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궤를 함께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전국 빈집 중 농어촌 빈집은 7만8000호로 62%가 활용 가능한 곳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화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는 제주 바다를 한눈에 보면서 주중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피스+카페+숙소' 기능을 갖춘 마을의 핵심 거점 모델입니다. LG, 현대중공업, 이지스자산운용 등 기업 단위로는 650명이 방문해 워케이션 트렌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일반 고객도 연평균 500명이 넘을 정도로 빈집 활용과 워케이션 트렌드 접목이라는 점에서 호응도가 높습니다. 관건은 '지속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양군모 세화마을협동조합 마을 PD가 지난 4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에서 설명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속 가능성 과제"
벤처기업·빈집 재생·워케이션 등 삼박자를 갖추게 할 마중물이 농식품 모태펀드이나 손실 보전, 규제, 농업 지역 경제와 연계한 지속 가능 모델, 주민 참여형 운영, 기업·기관의 장기 수요 유치는 숙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제와 관련해서는 더 많은 청년들이 농촌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태펀드 투자 범위에 빈집 정비를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단순 카페 활용보다는 체험·교육·농산물 직거래 등 해당 지역의 농업 연계의 가치를 높이는 일도 보완할 부분입니다.
나아가 개별 빈집 단위의 리모델링보단 다수의 빈집 마을을 묶어 클러스터 단위로 개발, 확장할 수 있는 모델도 고민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자생적 수익 구조까지 초기 정부 지원 의존도가 높은 만큼 빈집 카페, 빈집 게스트하우스 형태의 숙소, 로컬 체험장 등 주민 공동 운영의 협동조합 설립에 따른 지역 수용성 강화가 대표적입니다.
지자체 관계자는 "이주민을 위한 사업도 당연히 있지만 원도심 같은 경우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해서 하는 사업들이 많다. 우선적으로는 원도심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다수의 빈집 마을을 묶어 클러스터 단위로 개발, 확장하는 모델도 고민하고 있는 방향"이라며 "숙박과 체험에 한정하기보단 지역화폐를 통해 농업, 관광, 공동체의 결합 모델로 확장하는 지속가능성 모델을 계속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미령 장관은 "모태펀드는 그야말로 시드머니"라며 "모태펀드를 우리 농업·농촌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소형 농식품부 농촌재생지원팀 과장이 지난 4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제주=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