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자리를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고 모욕하고 배척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 행보를 같이할 수 있겠는가."(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 7일 <연합뉴스> 인터뷰)
'배신자 프레임'이 또다시 국민의힘을 덮쳤다. 이쯤 되면 유승민(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을 축출한 '박근혜 데자뷔'다. 2015년 4월9일 국회 본회의장.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공화주의를 역설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보수의 '잃어버린 10년의 신호탄'이 됐다. 누가 알았겠나. 민주당조차 찬사를 보낸 유승민발 연설이 끝내 박근혜 파면으로 이어질지. 보수의 고질병인 '배신자 프레임'이 부상한 것도 이때.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지만, 보수는 더 퇴행했다. 보수의 가치는 걷어찬 채 적개심으로 메워버린 탈냉전 시대의 냉전적 사고로 뒤덮였다. 해방 이후 산업화를 이끈 한국의 보수가.
"청와대 얼라들이 하냐"…유승민에 덧씌운 '배신자 프레임'
실제 그랬다. 10년 전보다 더 오른쪽으로 갔다. 유 전 원내대표는 당시 "134조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는 지킬 수 없다"며 '중부담·중복지'를 들고 나왔다. 특히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며 재벌 개혁도 거론했다. '한국판 제3의 길'을 선보인 순간.
하지만 만개하지 못했다. 한국판 토니 블레어는커녕 2016년 총선을 끝으로, 원내에 진입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당시 여권 주류는 유 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기점으로 '루비콘강'을 건넜다. 분기점은 친박(친박근혜)계의 유승민 찍어내기. 2011년 당명 변경(한나라당→새누리당)을 놓고 충돌했던 양측의 앙금이 유 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폭발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더 구중궁궐로 들어갔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 둘러싸였다. 박근혜 귀를 틀어막았다. 특히 청와대 문건 파동 배후로 지목된 K와 Y가 비박(비박근혜)계인 김무성 당시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로 거론되자,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유 전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반년 전부터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비선 의혹을 제기했다. 2014년 10월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유 전 원내대표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외교부 누가 하느냐"라며 "청와대 얼라(어린아이·경상도 방언)들이 하는 겁니까"라고 했다. 유 전 원내대표 발언은 박근혜의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문 초안에 들어간 '중국 경도' 발언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나왔다.
장동혁호 곳곳에 '몰락 징후'…기어코 찾아올 '위기'
사진은 지난 5월26일 한동훈(왼쪽)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도봉구 방학사거리 인근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집중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박근혜는 끝내 변하지 않았다. 기어코 찾아온 위기. 종착지는 파면. 도화선은 최순실 게이트. 시작은 유승민 찍어내기. 헌정사상 첫 헌법재판소에 의한 '대통령 파면'이란 오욕의 역사는 그렇게 쓰였다.
지금도 국민의힘 곳곳에 퍼진 몰락의 징후. 극우 한가운데 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그의 대표직 수락 연설 핵심은 '우파 연대를 통한 이재명정권 종식'. 하지만 그는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은 물론, 악수조차 거부했던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도 손을 잡았다. 협치까지 갈 길이 멀지만, 물꼬는 튼 셈.
하지만 딱 한 명. 한동훈 전 대표만은 비토. 대표 취임 직후에도 '내부 총질을 하는 당내 세력'에 대해 결단을 촉구하더니, 지난 7일 <연합뉴스>에 보도된 인터뷰에선 한 전 대표를 콕 찍어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를 최악이라고 표현한 분과 어떤 통합을 하고 어떤 정치를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패널 인증제. 핵심은 당 공식 입장만 대변하는 패널만 방송에 출연시키겠다는 기괴한 발상. 명분은 해당 행위 근절. 실상은 장동혁발 보도지침. 사실상 검열 아닌가. 한동훈계의 입틀막(입 틀어막기) 하나 때문에 언론 편성권을 건든, 나가도 한참 나간 퇴행적 발상.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 시즌2'다. 앞서 정진석 당시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022년 12월 각 방송사에 <패널 구성 시 공정성 준수 요청의 건>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보수 참칭' 패널로 지목한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을 겨냥한 용산발 입틀막. 종착지는 헌정사 두 번째 파면. 도화선은 12·3 비상계엄. 시작은 명태균 게이트 의혹.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1992년 대선을 거머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몰락은 3년 뒤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결별 이후 본격화했다. 1997년 JP와의 내각제 연합정권을 꾸린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2001년 JP와 결별 직후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졌다. 보수든 진보든 연합 해체의 후과는 폭망. 역사는 반복된다.
최신형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