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금융소비자원(금소원) 신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실익은 없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금융권 안팎의 우려가 터져 나옵니다. 현장에서는 검사권 남발과 과도한 규제 경쟁,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소비자 혼란, 행정비용 증가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복 기구 신설…효율성 실종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금소원을 독립된 전문 기관으로 세워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 분쟁 조정, 제도 개선 권고까지 전담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금소원 신설이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취지와는 달리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중복 기구 신설로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현재도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 금융위원회 산하 분쟁조정 기능 등 일정한 소비자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여기에 금소원까지 신설되면 유사 기능을 가진 기구가 3중 구조로 늘어납니다. 결국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구가 중복 운영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 금융위, 금감원 체제에서도 소비자 보호가 미흡하지 않았다"며 "기관을 늘린다고 해서 소비자 보호 효과가 커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단일하고 신속한 창구"라고 말했습니다.
기구가 늘어나게 되면 소비자 민원이 발생했을 때 금감원에 가야 하는지, 금소원에 가야 하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져 도리어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를 양산할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동일 업무에 두 기관이 관여하면 행정 비용과 금융사 부담 모두 증가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소원을 분리 신설하면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명분과 달리, 예산과 인력 등 최소 연 1000억원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해당 재원은 결국 금융사 출연금으로 충당되는데, 결국엔 수수료·보험료 등 형태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원과 직원들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 로비에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임 불분명…"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금소원 신설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현재는 금감원이 금융회사 검사·제재와 소비자 피해 구제를 함께 맡고 있어 문제가 생기면 한 기관이 최종 책임을 집니다. 금소원이 분리되면 민원·분쟁 처리, 소비자 피해 구제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 경우 사고 처리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 원인이 금융사의 불완전판매인지, 감독당국의 사전 감독 부실인지 명확히 가르기 어려워 집니다.
과거 2019년~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에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감독 책임을 두고 공방을 벌인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금융위·금감원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실질적 피해 구제는 지연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소원까지 신설되면 사건 발생 시 책임 미루기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어느 기관도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는 영역이 생겨 금융사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입는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란 얘기마저 들립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기관이 많아질수록 책임의 무게는 분산되고, 피해자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표면적으로는 소비자 보호 강화 같지만, 실제로는 기관 간 책임 떠넘기 때문에 분쟁 해결이 더딜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구가 하나 더 생긴다고 책임이 명확해질 리 없고, 도리어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습니다.
금융사 과잉 규제 시각도
업계에선 검사·제재 권한이 남발될 경우 과잉 규제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합니다. 금소원에 별도의 검사·제재 권한이 부여된다면 금융사는 동일 사안을 놓고 금감원과 금소원의 이중 검사를 받게 됩니다. 각 기관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강경한 소비자 보호 이미지' 경쟁을 벌일 경우, 과도한 제재나 불필요한 중복 조치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업계에선 은행, 보험사, 카드사 모두 금융위와 금감원의 정기·수시 검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소원까지 검사권을 행사하면 똑같은 문제를 세 기관이 들여다보는 구조가 되는 데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구 신설로 기관 간 경쟁과 관할 다툼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단 걱정도 큽니다. 과도한 경쟁이 발생할 경우 금융사에 대한 지시가 제각각 나올 수밖에 없고,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질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결국 소비자 피해는 줄지 않고, 금융산업 혼란만 커진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지적 사항입니다.
조직 내부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금감원 직원들은 이날도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및 공공기관 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이틀째 출근길 검은 옷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금소원 분리가 오히려 소비자 보호를 역행하고, 공공기관 지정 시 정권의 입김으로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규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금소원 신설보다는 기존 제도의 개선이 먼저라고 짚었습니다.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국 권한 강화, 전문 인력 확충, 분쟁조정 절차 단축 등이 보다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진단입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교수는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논란과 금소원 분리 문제는 결국 관치금융 우려를 낳게 된다"며 "금융산업 입장에선 심각한 관치하에 들어갈 위험성이 높고, 자본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김 교수는 "금소원 신설은 소비자를 보호한다면서 정작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는 구조"라며 "소비자 보호의 본질은 새로운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단순하고 명확한 책임 체계, 신속하고 실효적인 구제 시스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