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습니다. 우주론과 형이상학의 표준적 모델을 제시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는 인류에게 항해술과 교류를 가능하게 한 신의 선물로 바다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을 외부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통로로 지식과 교류의 매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인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대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기원과 우주적 질서가 물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를 보면, 인류와 바다의 연결성 접근은 더욱 뚜렷합니다. 인간은 바다로부터 생존 자원을 얻고 자연 질서와 연결된 숨과 같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인간에게 끝없는 풍요와 신비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수천만 년 동안 지구의 기후와 생명을 지탱해온 거대한 순환의 장이죠. 그러나 이젠 바다가 변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여전히 광활하고 푸른 바다. 그런 바다가 신음하면서 바다의 혈관처럼 흐르는 해류를 따라 전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뉴스토마토>가 목포 앞바다를 찾았을 때는 수소와 전기로 달리는 배, 탄소를 내뿜지 않는 '바다 위의 실험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뉴스토마토)
현생 인류도 매연을 뿜어내는 선박을 접고 수소와 전기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화의 흔적인 증기선의 검은 연기, 디젤 기관의 매캐한 매연이 오늘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로 이어지는 부메랑됐기 때문이죠. 최근 <뉴스토마토>가 목포 앞바다를 찾았을 때는 수소와 전기로 달리는 배, 탄소를 내뿜지 않는 '바다 위의 실험실'을 목격했습니다.
3MW급 배터리·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예인선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전남 영암의 조선소에서는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와 대용량 배터리를 결합한 선박 추진 기술을 볼 수 있습니다. 친환경(배터리 추진 및 수소 하이브리드) 선박과 해양 추진 장치 전문기업인 빈센(VINSSEN)은 선박용 전력변환장치를 개발하는 등 해양수산부로부터 형식 승인을 획득한 곳입니다.
현재 3MW급의 시스템 구성 요소인 배터리, 연료전지의 선급 형식 승인 시험을 수행 중입니다. 이는 연기 대신 맑은 숨결을 토해내며, 인간이 바다에 남긴 빚을 조금씩 갚아가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난해 말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이 ‘'스마트선박안전지원센터'를 가동하면서 전기 추진 시스템 시험 장비를 갖췄고 이미 24대의 전기 추진 장비 검사를 마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천만 원의 비용 절감, 납기 안정성 향상이라는 실질적 성과도 이끌어냈습니다. 기술이 시도와 성과를 낳고, 성과가 다시 시도를 부르는 선순환의 시작인 겁니다. 빈센이 제작 중인 수소연료전지 추진 선박은 지난 2023년 제정된 선박안전법 아래 '선박 수소연료전지 설비 잠정 기준'으로 검사를 받아 운항하게 될 예정입니다. 해양교통안전공단이 해당 선박의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뉴스토마토>가 목포 앞바다를 찾았을 때는 수소와 전기로 달리는 배, 탄소를 내뿜지 않는 '바다 위의 실험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뉴스토마토)
하지만 성과의 완성을 부르짖기에는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수소연료전지 선박은 아직 '잠정 기준'이라는 임시 거처에 머물러기 때문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범과 호흡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배는 국내 바다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수소는 불꽃처럼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연료이기도 합니다.
해상에서의 누출·폭발 위험에 대한 매뉴얼, 구조 인력의 훈련 체계가 여전히 미완성인 것도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마치 시인이 초고를 남긴 채 원고를 완결하지 못한 것처럼, 국제사회의 스탠더드 규범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친환경 선박은 기술의 혁신일 뿐만 아니라 문명 전환을 향한 우리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동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 시험 설비가 한 지역에만 집중돼 있다면 중소 기자재 업체는 여전히 시험 비용과 거리를 이유로 낙오할 수 있습니다. 해운사들은 발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주저할 것이고, 항만에는 수소 벙커링 시설조차 없다면 이 모든 시도는 닻을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넘어선 '전환의 인프라'에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국제 기준을 향한 법과 제도, 안전 체계를 선도하고 선언적 수준에 머문 수소 항만과 공급망을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소와 전기의 숨결이 단지 실험실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바다의 숨결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뉴스토마토>가 목포 앞바다를 찾았을 때는 수소와 전기로 달리는 배, 탄소를 내뿜지 않는 '바다 위의 실험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