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진해 군항에서 전세계를 돌며 군함외교를 할 해군순항훈련전단이 출항 환송행사를 하고 있다.(사진=해군)
"해군 함정 수준이 곧 국력 수준이다."
이는 격년제로 하와이 근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해군 훈련인 환태평양훈련(림팩·RIMPAC)에 참가해 보면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단순한 말 같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성장 전략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현대 해군 함정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조선·해양공학, 전자·ICT, 항공우주, 에너지·원자력, 첨단 소재·부품 등 거의 모든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움직이는 종합 과학기술 박물관'이다. 따라서 해군 함정을 건조·운영하는 역량은 곧 국가의 기술력·산업력·국방력을 동시에 드러내는 지표다.
21세기는 육상 자원의 한계와 고갈이 본격화되는 시대다. 바다에 매장된 석유, 가스, 희토류 같은 전략 자원 확보를 위해 세계 각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북극항로에서 벌어지는 해양 영토 분쟁은 자원전쟁이자 해양 패권 경쟁의 전조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해군의 역할은 단순한 국방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특히 군함 전개를 통해 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함정 외교'는 이미 주요국들의 일상적 외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은 이미 조선 강국이다. 세계 1위 수준의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역량, 친환경 선박·해양 플랜트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해군 또한 3000톤급 잠수함,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유무인 전력 탑재 경항모 개발 계획 등 아시아 최상위 수준의 첨단 해군력을 구축 중이다. 여기에 K9 자주포, K2 전차, FA-50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는 방산 수출은 2022년 173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우며 'K-방산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 세 축을 하나로 묶는 전략적 틀이 바로 '조선·해군·방산 삼각동맹'이다. 조선업의 기술 혁신은 해군 함정의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첨단 무기체계와 결합한 해군력은 외교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한다. 동시에 방산 수출은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중·소국들에 '균형 잡힌 지·해·공군 전력 건설의 한국형 모델'을 제공한다. 즉, 조선 기술 → 해군 전력 → 방산 수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은 강대국과 달리 식민 지배의 부정적 이미지가 없고, 중·소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실질적 안보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첨단 잠수함과 구축함을 활용한 한국 해군의 '군함 외교'는 이러한 강점을 극대화한다. 군함을 통해 해양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동시에 방산 협력·교육훈련·정비(MRO)까지 패키지로 제시한다면 많은 국가가 한국을 '균형된 군사력건설 도우미 국가'로 선택할 것이다. 이미 폴란드, 필리핀, 페루 등에서 나타난 K-방산 성공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 삼각동맹을 국가적 성장 전략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첫째, 조선업은 친환경·스마트 선박 기술과 군함 건조·방산을 연계하는 '투트랙 혁신'이 필요하다. 둘째, 해군은 첨단 무기 도입뿐 아니라 함정 외교와 연합훈련을 통한 '외교 자산화'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방산 기업은 완제품 수출에서 벗어나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제공하고, 교육훈련·MRO를 포함한 '토털 솔루션 수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삼각동맹은 단순히 국방력 강화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의 혁신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해양 자원 확보, 국제 안보 기여, 첨단 기술 수출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국가 성장 모델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국력은 바다에서 결정된다. 함정을 건조하는 조선 기술, 이를 운용하는 해군력, 그리고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방위산업이 하나로 융합될 때, 대한민국은 단순한 중견국을 넘어 글로벌 전략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조선·해군·방산의 삼각동맹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이자 국가 비전이어야 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