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

입력 : 2025-10-10 오전 6:00:00
음력 팔월 보름 '한가위'. 조상의 혼을 상징적으로 모시는 지방 앞에 살아 있는 우리는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때론 소원을 빈다. 
 
돌아가신 분을 자주 기억하는 나라지만 정작 죽음을 두려워하며 꺼리는 민족.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유튜브를 통해 "조선시대 이후 한국만의 제사 문화는 죽은 이를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겼다"고 말한다. 묘에 절을 올리고 묘비 앞 밥을 나누는 문화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의 표현으로 분석했다. 
 
우린 그토록 죽음을 부정한다. 죽음은 불경스럽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불길하다고 믿는다. "직장에 돌아왔을 때 동료들이 그 이야기를 피하려 했던 게 더 상처였다." 장 박사가 전한 어느 유가족의 말이다. 죽음을 덮는 사회는 결국 상처를 덮는 사회로, 그리고 그 상처는 세대를 넘어 조용히 번져간다고 전했다.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치를 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두 배가 넘는 이 수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경고음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다. 40대 자살도 암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섰다. 최악의 노년층 자살까지 더하면 특정 세대만의 비극이 아니다. 10대에서 노년까지 한 세대 전체가 '버티기의 사회'로 내몰려진 한계의 임계점을 넘었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학교 성적과 입시 경쟁, 불안정한 가정,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증폭되는 비교와 고립, 그리고 '이해받지 못함'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의 밑바탕에는 한 가지 공통된 '단절감'이 있다. 
 
우리 사회는 끝없는 경쟁과 성취를 요구하며 정작 '괜찮니' 한마디엔 인색하다. 공동체의 감정 구조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에서 소위 어른들도 열심히 살 것을 말하고 있지만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진 못한다. 그들조차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앞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윌 스토어의 저서 '셀피(Selfie)'를 인용한 장 박사는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SNS 시대에서 폭발적으로 커졌다"고 언급했다. 남의 행복을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사회적 구조가 우울을 낳고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 
 
특히 '고립·은둔·고독'은 심리적 취약성으로 꼽힌다. 물리적 연결은 강화됐지만 정서적 밀도가 약화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 관계 붕괴가 생애 전반에 반복되며 만성화된다. 
 
가까운 일본도 장고 끝에 고독·고립을 국가적 과제로 법제화한 '고독·고립대책추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지원 범위와 세부화 부족, 사후적 접근의 치중은 보완해야 하나 법제화를 통한 정책 우선순위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생애주기 전환기 대처가 부처 간 정책 경계로 막혀있다. 이재명정부가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설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관련 부처의 연계 대응을 위한 시그널이나 위험 신호를 잡아낼지는 미지수다.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관계, 실패를 감싸는 문화,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의 체온. 더 최악이 되기 전 '사람 사회'로 남기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책무가 되고 있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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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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