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건보 보험급여 후 보험금 한도까지 지급됐어도 건보 구상 가능

입력 : 2025-10-09 오후 1:54:00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해외여행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했더라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이 피해자들에게 치료비를 부담했다면, 공단이 보험사를 대상으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는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서초동 대법원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피고 보험사는 공동피고인 여행사(A회사)와 A회사의 여행사 업무에 관해 배상책임을 담보하는 전문인 배상책임보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보험 계약은 대인과 대물의 총 보상 한도가 5억원이고, 1청구당 3억원 한도로 보장되는 계약이었습니다. 
 
2017년 12월경 A회사를 통해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하던 피해자들이 탑승한 차량이 전복되면서 피해자들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귀국해 치료받는 동안 공단은 3900여만원의 치료비를 지급했고, 보험사는 공단의 보험급여와 A회사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지급한 손해배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손해에 대해 보험 계약의 한도인 3억원을 모두 지급했습니다. 
 
이후 공단은 A회사와 보험사를 상대로 공단이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보험급여를 구상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공단으로부터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를 받고 보험사로부터는 보험 계약의 보상 한도까지 보험금을 지급받았지만, 아직 보상받지 못한 손해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공단이 보험사에 대해 구상권을 전부 행사할 수 있는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 됐습니다. 
 
1심은 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은 공단이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 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인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즉, 공단이 먼저 피해자에게 지급한 건강보험 보험급여의 한도에서 피해자의 가해자 또는 그 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대위(다른 사람의 법률적 지위를 대신해 그 권리를 얻거나 행사하는 것)할 수 있도록 정한 겁니다. 
 
1심은 공단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한 이후 가해자 또는 보험자가 손해배상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지급한 돈을 구상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입장을 따라 공단의 청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2심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단이 피해자들에게 보험급여를 한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잔존 손해액이 A회사가 가입한 책임보험의 보험금 한도액을 초과하면, 채권자 평등 원칙에 따라 보험사는 공단이나 피해자들 중 누구에게나 정당하게 변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공단 구상금에 대한 변제 등으로 보험금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들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적법하게 청구하여 수령할 권한이 있다는 겁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실제 손해 규모가 공단의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피고의 책임보험금 한도액의 합계를 초과함이 분명하므로, 피해자들은 보험사에 직접 책임보험금을 보상 한도까지 행사할 수 있고, 보험사는 피해자들에게 책임보험금을 한도액까지 지급해 보험금 지급 의무가 소멸했으므로 공단의 보험사에 대한 구상권도 소멸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우선 공단이 피해자들에게 보험급여를 하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채권 범위 안에서 보험급여액 중 가해자의 책임 비율에 대항하는 금액에 관해 대위할 수 있고, 공단의 보험급여 이후 가해자나 보험자가 손해배상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지급한 돈을 공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다만 공단이 피해자를 대위해 얻는 손해배상채권은 피해자의 전체 손해배상채권 중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동일한 사유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어 보험급여의 실시로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이 전보돼 소멸될 수 있는 경우에 한정되므로, 책임보험에 한도액이 있으면 그 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한 돈이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지 않다면 이는 보험자가 공단에 지급할 책임보험금에서 공제돼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공단이 우선 피해자들에게 보험급여를 한 후 보험사가 책임보험금 한도액을 모두 지급한 경우 공단이 이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게 됐으므로, 보험사가 공단의 보험급여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기왕치료비(이미 발생한 치료비) 상당의 책임보험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는 이유로 공단의 구상금 청구를 거부할 수 없고, 보험사의 책임보험금 한도액이 피해자들의 실제 손해액 전체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보험사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책임보험금 중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지 않은 부분은 보험사가 공단에 지급할 책임보험금에서 공제돼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공단이 건강보험 보험급여를 하면 공단은 보험사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단의 구상권 행사가 항상 우선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보험의 한도액이 있는 경우 보험사가 비급여 대상 치료비 등을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했다면, 비급여 대상 치료비 등으로 지급된 부분은 공단의 구상금에서 공제돼야 하는 겁니다. 따라서 보험사가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한 돈과 건강보험 보험급여와의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지에 따라 공단의 구상 범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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