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조원 보험료 내면서도…안전 성적표 ‘제자리’

매년 2000명대…줄지 않는 산재 사망
ESG 보고서엔 ‘탄소’만…‘안전’은 실종

입력 : 2025-10-14 오후 3:00:41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최근 5년 동안 사후 비용인 산재보험료로 수조원을 납부해온 대기업들이 정작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 예산은 공개하지 않거나 총액만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에 탄소 감축과 친환경 성과를 빠짐없이 담는 것과도 대비되면서, 노동자의 ‘안전’ 관련 항목은 여전히 형식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고 뒤에 치르는 보험료에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사고 예방 투자는 뒷전’인 셈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지난 4월23일 서울 종로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산재 사망 기업 규탄 및 피해자를 추모하며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020년 2062명, 2021년 2080명, 2022년 2223명, 2023년 2016명, 2024년 2098명입니다. 매년 2000명 이상이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뚜렷한 감소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막대한 보험료 부담에도 산재 사망자가 좀처럼 줄지 않는 가운데, 실제 기업들의 안전보건 투자가 얼마나 이뤄지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GS건설 등 주요 대기업의 ESG 보고서에는 교육 시간, 위험 발굴 건수, 국제 인증 취득 등이 나열돼 있지만 실제 ‘안전보건 예산’은 기재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안전 예산’이 언급된 포스코의 경우에도 “안전보건 예산을 독립적으로 편성, 안전 예산 선실행-후정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도만 명시돼 있습니다. 
 
대우건설,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등이 ‘안전경영 예산’을 공개하고 있으나, 각사가 어디까지를 예산에 포함했는지 알 수 없어 실효성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탄소 배출량이나 여성 임원 비율 같은 지표는 빠르게 공시되고 있어 ‘안전’ 분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8월 경기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광명 고속도로 공사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안전보건 투자는 사고 자체를 막는 ‘선제 비용’이라고 강조합니다. 안전교육, 보호구 지급, 안전설비 교체, 스마트 모니터링, 위험성 평가 등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재 감소와 보험료율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국내 대기업들의 안전보건 투자는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어 형식만 갖춘 ESG 경영이 현장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를 지낸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은 “기업들이 지속가능보고서 등을 작성할 때 안전보건 부문을 형식적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다”며 “국제 기준을 따른다고 밝히면서도 산업안전보건의 핵심 항목은 선택적으로 누락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전자가 ESG 보고서의 사회(S) 부문 중 안전관리나 임직원 보건 지표에서 직업병(백혈병 등) 항목을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어 “공정 외주화나 자회사 전환 등 공급망 구조까지 포괄해 관리해야 하지만 실제 보고서에서는 본사 직원만을 기준으로 안전 지표를 제시해 실질적 위험을 가리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대부분의 기업이 안전보건 담당 임원 선임, 위원회 구성 등 형식적 체계는 갖췄지만 예방을 위한 실질적 투자는 거의 하지 않아 산업안전은 ‘뼈대’만 세웠을 뿐 내용물은 비어 있는 상태”라고 꼬집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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