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송정은 기자] "가락쌍용1차가 2064가구인데 전세 물건이 없어요. 말이 안 되죠. 그나마 하나 나온 33평은 9억으로 뛰었고요." (송파구 가락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
"래미안하이리버나 금호삼성래미안은 전세 물건이 사실상 전멸이에요. 20평대 한두 건 정도 나오는 정도고, 요즘 전셋값도 뛰고 시장이 워낙 어수선하다 보니 대부분 갱신 계약하면서 눌러앉죠." (성동구 옥수동 B공인중개업소 대표)
전세 매물이 부족해지면서 기존에 전세로 거주 중인 세입자들도 재계약할 때 전세금이 인상되거나, 기존 전세보증금에 월세가 추가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6·27 대책으로 갭투자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전세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서울 주택 공급 물량 감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하반기 금리 인하로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 현상이 높아지면서 수요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14일 가락동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다섯 곳을 찾았지만 모두 '전세 매물이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근 가락프라자 아파트의 조합원 이주가 시작돼 전세 수요가 늘었고, 3월 개학을 앞두고 매물이 대부분 소진된 이후 수개월째 나오는 물건 자체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뭄에 콩 나듯 간혹 매물이 나와도 매물 사이트에 올리기도 전에 대기 중인 수요자와 바로 계약이 체결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가락쌍용1차 아파트. (사진=홍연 기자)
서울 송파구 가락동 일대 아파트 단지. (사진=홍연 기자)
1만가구에 육박하는 대단지에서도 전세 물건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9510가구) 전세 매물은 367건(3.86%)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복 등록된 수치로, 실제 매물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근 중개업소의 전언입니다.
마포구 창천동 창전삼성(창전래미안) 아파트도 951가구 단지에 전세 매물이 한 건도 없습니다.
마포구 대흥동 C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용강동이나 창천동 대단지 아파트는 30평대 전세 매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손님이 있어도 보여줄 물건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갭투자를 막고 대출까지 조이니까 집주인들이 실거주하는 경우도 많아 전세 수요자들만 애가 타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셋값 고공행진…갱신 계약도 늘어
전세 매물이 줄면서 전세가격 역시 매주 상승세가 커지고 있습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5431만원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2022년 11월(6억5980만원)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5.5% 상승했습니다.
전세 시장 불안정성이 커지자 신규 계약은 급감하고 갱신 계약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전세 계약은 9094건으로 이 중 신규 계약은 47.8%(4350건)에 그쳤습니다. 갱신 계약은 8월 2694건, 9월 2264건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4배, 2.2배 늘어났습니다.
서울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이번 주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규제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추가 대출 규제 등이 담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대출 규제가 강화하면 전세난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특히 6·27 대책 이후 전세대출 보증 한도 축소와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세 공급이 위축되고 있다"며 "추가 부동산 대책에서 전세대출 원금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이러한 흐름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합 랩장은 "전세 물량이 줄면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동시에 월세로 이동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임대료 전반이 오르는 구조가 형성된다"며 "금리 인하 국면에서 전세난이 심화할 경우 무주택자들이 '차라리 매수하자'는 심리를 가지게 돼 매매 시장까지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책과 금융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전세 공급이 구조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서울 지역 전세 매물 감소는 정책과 금융 규제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며 "갭투자 제한, 전세 퇴거 자금 한도 축소, 대출 심사 강화 등이 겹치면서 시장의 전세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입주 물량 감소까지 맞물리면서 전세 수급 불일치가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송 대표는 "최근 시장이 실거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임대사업자나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며 "전세 매물이 줄면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다시 월세 전환을 촉진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은 상급지 중심의 수요 이동과 맞물려 '똘똘한 한 채' 선호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며 "전세난이 심화될수록 매매 시장까지 풍선효과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홍연·송정은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