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맞은 양자 과학. (사진=EPFL)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올해는 양자 과학에서 매우 의미있는 해입니다. 유네스코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지 100년이 되는 올해를 ‘세계 양자 과학 및 기술의 해’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1925년 12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스위스 알프스의 아로사(Arosa)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프랑스의 이론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의 물질파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슈뢰딩거 방정식(Schrödinger equation)을 도출하였습니다.
슈뢰딩거는 휴가 동안 이론적 작업에 몰두하여, 1926년 1월26일 물리학 연감(Annalen der Physik)에 첫 번째 논문인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 제1보(Quantisierung als Eigenwertproblem. Erste Mitteilung)’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방정식은 기존의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세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며,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시작된 양자 혁명,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은 원자핵 주위의 공간에 퍼져 있는 확률적 분포로 이해되는 전자 구름과 같은 미시적 시스템의 파동 함수(wave function) 변화를 기술합니다. 간단히 말해, 원자의 전자 위치와 운동량을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공식입니다. 뉴턴 역학이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학문’이라면, 양자역학은 ‘무엇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지’를 계산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방정식과 양자역학의 발전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오늘날 우리 생활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혁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일어난 첫 번째 양자 혁명은 현대 기술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양자 이론은 반도체와 광자 산업을 가능하게 했으며, 레이저, 자기공명영상(MRI), 원자시계(GPS 핵심 기술) 등 다양한 혁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레이저(Laser)는 CD, 바코드 스캐너, 통신 장비 등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인체 내부를 방사선 없이 관찰할 수 있는 MRI도 양자역학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GPS에는 정확한 시간기준이 필요한데, 여기에 사용되는 원자시계도 양자역학의 산물입니다. 이처럼 양자역학은 이미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두 번째 양자 혁명 – 다양한 분야로 응용 확대
이제 인류는 두 번째 양자 혁명의 문턱에 있습니다. 개별 원자와 광자(Photon)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양자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현상을 활용해 감지, 통신, 시뮬레이션, 컴퓨팅 등 다양한 응용 영역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은 2021년 양자과학·공학센터(QSE Center)를 설립해, 물리학, 컴퓨터 과학, 공학 분야의 연구자를 한데 모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양자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양자 기술 미래를 위한 산업·공공 파트너십을 지원합니다.
EPFL의 연구자들은 단일 원자, 빛 입자, 결정 등을 이용해 지구와 뇌의 전자기장 지도화, 정밀 측정 센서 개발, 상용 양자 제품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용 큐비트는 진동, 온도, 전자기장에 민감하여 대규모 양자컴퓨터를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되지만 정밀 센서를 만드는 데는 장점이 됩니다. 큐빗 기술은 지질탐사용 중력계(Gravimeter) 개발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GPS 신호가 도달하지 않는 지하 및 해저 환경에서도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자력계(Magnetometer) 설계에 응용될 수 있습니다.
EPFL의 장-필리프 브랑튀(Jean-Philippe Brantut) 교수는 “양자는 이상하면서도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센서나 측정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양자 센서는 의료 영상(Medical Imaging) 분야에서도 활용됩니다. EPFL에서 양자물리학을 공부하고 스위스 북서부 응용과학예술대학교(Fachhochschule Nordwestschweiz) 응용 양자컴퓨팅 교수로 있는 클레망 자베르자크(Clément Javerzac)는 양자 센서를 이용해 심장의 자기장을 비침습적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심장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보다 약 100만배 약하지만, 이를 통해 관상동맥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습니다. 측정 장치는 가슴 근처에 두는 작은 박스 형태로, 측정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며 방사선 피폭도 없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심장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 가능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의료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클라우드 기반 양자컴퓨팅을 활용하면 작은 데이터로도 큰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양자 기술은 블랙홀 역학과 같은 기초 물리학 연구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원자구름(nuclear cloud)을 이용해 블랙홀 방정식을 모델링함으로써, 실제 블랙홀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사한 물리적 현상을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브랑튀 교수는 “양자는 여전히 수수께끼이지만, 기초과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잠재력이 막대하다”고 강조합니다.
양자 혁명이 여는 미래, 한국의 과제는
슈뢰딩거가 제시한 방정식과 양자역학은 단순한 과학적 이론을 넘어, 오늘날 센서, 의료, 통신, 컴퓨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 응용되고 있습니다. EPFL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연구 기관들은 양자 기술을 발전시키고 상용화하며, 양자 혁명의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수학적 상상력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산업, 그리고 미래 과학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 기술의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인류의 생활과 산업을 혁신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2023년 8월에 발표한 ‘양자 기술 국가전략 로드맵’에서 2035년까지 양자 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0%를 목표로 3조 원 이상의 투자를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로드맵은 양자 기술의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로드맵의 실행에는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적 난제로는 양자 컴퓨터의 안정성, 오류 수정, 대규모 연산 능력 확보 등이 있으며, 산업화의 어려움으로는 민간 기업의 참여 부족, 시장 수요의 불확실성, 기술 이전 및 상용화 전략의 미비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국양자협회 허창용 이사장은 “양자산업 생태계를 키우고, 양자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확산하기 위해서는 이제 민간이 주도하는 범국가적인 협력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라며 국가적 차원의 얼라이언스를 강조합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