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큰 금액으로 상품권을 구매 후 바로 환불하였습니다. 이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하는 의심 거래에 해당됩니다."
지난 9월 중순, 온라인 상품권 발행사 A사에서 4일간 약 50억원의 돈이 움직이던 바로 그때. 회사 내부에서는 이를 막으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던 한 임원이었습니다. 그는 "큰 금액의 상품권 발행·환불은 의심 거래에 해당한다"며 대표에게 경고 메일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23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A사 리스크 담당 임원 B씨는 9월19일 이상거래를 지적하며 FIU에 보고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를 묵살했습니다. 9월20~21일에도 26억원 규모의 추가 거래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해당 임원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회사를 떠났습니다.
9월19일, 첫 번째 경고…"이상거래, 자금출처 소명하라"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A사 내부 문건을 보면, 9월19일 오후 이 회사 리스크 담당 임원인 B씨가 회사 대표에게 급하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당시 메일에서 "당사는 전자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업체로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야 하며, 상품권 거래 시 범죄수익 또는 불법재산, 자금세탁과 관련한 의심거래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FUI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명확한 경고의 의미입니다.
B씨가 메일에서 언급한 의심 거래란, 9월18일 약 4억6900만원, 9월19일 약 16억3400만원의 상품권이 구매 직후 전액 환불된 것을 말합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큰 금액"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B씨는 온라인 상품권을 거래한 업체에 대해 △거래금액 자금 출처 및 증빙 자료 △상품권 구매 후 즉시 환불 사유 △환불금 입금 계좌 및 계좌명 △범죄수익·불법재산 및 자금세탁 자금이 아님을 소명할 수 있는 증빙 서류를 9월22일까지 징구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또 "자료 미제출 또는 제출 자료 검토 시 충분한 소명이 안 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FIU에 의심 거래로 보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B씨는 시중은행에서 퇴임한 금융권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A사 대표는 B씨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틀 동안 2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갔지만, FUI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경고 무시하고 26억 추가 거래…B씨, "납득 안 돼" 퇴사
A사 경영진은 리스크 담당 임원인 B씨의 경고를 사실상 묵살했습니다. 9월19일 경고에도 불구하고, 9월20일엔 약 12억1400만원, 9월21일엔 약 14억2700만원의 거래가 추가로 진행됐습니다. 이틀간 26억원이 넘는 거래가 더 이뤄진 셈입니다.
리스크 담당 임원의 경고, 즉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강행된 겁니다.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결국 B씨는 소명 자료 제출 기한으로 정한 9월22일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회사 대표에게 보낸 퇴사 통보 메일에서 "온라인 상품권 사업이 너무 위험성이 큰 사업"이라며 "수십 년에 걸친 은행 생활을 통해 처리했던 저의 업무 스타일과 성격상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 권고였습니다. B씨는 "정식 계약 전 상품권 테스트 명목으로 운영 환경에서 수십억 원씩 거래가 일어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니 수탁업체로부터 소명 자료를 받더라도 반드시 의심거래로 FUI에 보고하시고 FUI로부터 판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진 신고 없으면 '깜깜이'…금융감독 '사각지대' 노출돼
이번 사건은 온라인 상품권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입니다. 회사가 자진 신고를 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이 이상 거래를 감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지난 10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디지털 금융의 모든 영역에서 이상 징후를 조기 발견해야 하는데 업종별로 미비한 부분이 많다"고 인정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도 "금감원이 전자금융업의 경우 회사별 내부망에서 선불 자금이 이동해 자금 추적이 어렵다는 구조적 취약을 인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A사처럼 내부 고발자의 경고를 묵살하고 금융당국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 외부에서는 문제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시중은행이 가상계좌 이상 거래를 감지하고, <뉴스토마토> 보도와 국회 지적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A사 "테스트였을 뿐…금융권 "더더욱 FIU 보고했어야"
A사는 여전히 당시 거래에 대해 "테스트 거래였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무위 국감과 함께 이뤄진 금감원의 A사 현장 검사에서도 A사는 '테스트 거래'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10월13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도 A사 대표와 법률대리인은 "정당한 기업 간 거래를 위해 트래픽 시스템 테스트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금융권 전문가들은 "테스트였다면 더욱 투명하게 금융당국에 보고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A사, 우려 제기한 일부 직원에겐 '징계 예고'까지
리스크 담당 임원인 B씨 외에 다른 일부 직원들도 상품권 이상 거래에 대한 우려를 전했지만 모두 묵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우려를 제기한 일부 직원도 이미 퇴사했습니다.
내부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제기한 또 다른 일부 직원은 지난 10월22일 회사 자체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가 예고된 상태입니다. 내부 고발자로 지목해 징계하려는 겁니다. 회사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A사 측에 회사 내부적으로 4일간 50억원의 거래에 관한 경고가 있었고, 회사에선 이것이 묵살됐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과 입장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A사 측은 답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 21일 A사는 이달 초부터 시작된 본지 보도에 대해선 "기사는 모두 허위이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