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삼성전자가 대만 TSMC와 함께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반도체 AI5칩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 수주는 그간 수조원대 적자를 이어오던 파운드리 사업부 실적 개선의 반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TSMC의 독주 체제에 균열을 깬 삼성전자는 최신 공정인 2나노 공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향후 업계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사진=삼성전자).
기존 테슬라의 AI4 칩을 생산하고 있던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테슬라 AI6 칩셋 수주에 이어 이번 AI5 생산까지 테슬라와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AI6는 일러도 2028년에 양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실적 반영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계약이었습니다.
반면 AI5는 2026년부터 생산에 들어갈 방침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실적에도 반영할 수 있습니다. AI5가 삼성전자의 어떤 공장에서 생산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7월 머스크가 “최근 설계를 마친 AI5는 TSMC가 대만에서 처음 생산한 이후 애리조나에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내년 완공을 앞둔 미국 테일러 팹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수주는 단순 계약을 넘어서 첨단 칩 제조를 TSMC와 함께 생산하는 ‘듀얼 벤더(복수의 납품 업체)’ 역할을 맡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를 통해 TSMC와 삼성전자가 가격 경쟁을 벌여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단가를 절감할 수 있고, 더 안정적으로 공급망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가 먼저 첨단 칩 제조를 TSMC·삼성전자 양쪽으로 나눈 만큼,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듀얼 벤더를 고민해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테슬라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굳힌 TSMC의 가격 정책으로 빅테크 기업들의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TSMC는 파운드리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3분기에는 영업이익 5007만대만달러(약 23조원)으로 집계돼 영업이익률이 50.6%에 달할 정도로 높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술력이 독보적이라 TSMC에 빅테크 기업들이 몰리는 상황입니다.
이로써 삼성 파운드리의 적자 폭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집니다. 삼성 파운드리는 수율 문제 등으로 매 분기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해 왔습니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가 이끄는 텐스토렌트와도 수주 협의에 들어가는 등 추가 고객사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울러 자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2600’을 본격적으로 양산하게 된다면, 파운드리 적자 폭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AI5 칩 생산은 구체적인 물량, 계약 금액 등이 나오진 않았지만, 파운드리엔 긍정적 영향”이라며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 고객사들의 추가 수주를 이어가는 게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