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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4일 16:52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국내 금융시장에서 사모펀드(PEF)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PEF의 자금 조달과 운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발행어음 인가 증권사의 기업 지분 투자 역량 확대는 PEF 시장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당국 견제에 떠는 사모펀드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 PEF협의회는 박병건 대신프라이빗에쿼티(대신PE) 대표를 제9대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부회장은 현승윤 스톤브릿지캐피탈 대표가 맡았다. 임기는 1년이다.
박병건 제9대 PEF운용사협의회장이 취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PEF협의회)
새로 선임된 박 대표는 그는 취임사를 통해 "PEF 업계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투자를 확산하기 위해 협의회 내에 관련 위원회를 빠른 시일 내에 출범시키겠다"라며 “새로 출범될 위원회는 산업의 건전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PEF협의회의 이번 행보는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인한 MBK파트너스를 비롯한 사모펀드 업계 전반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공시 의무 확대 △차입 한도 축소 △회계감사 금융위 보고 △2년 간 자본 유출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모펀드 관리·감독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며 "해당 사안을 준비해 향후 정무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사모투자전문회사 PEF는 지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되면서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제도 도입 초창기 국내 PEF의 총 설정액은 4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 기준 153조6000억원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내 PEF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당국이 현재 PEF가 주로 쓰는 차입매수(LBO)에 초점을 맞춰 규제안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LBO는 PEF의 운영 펀드자금 이외 인수 대상 회사의 자산이나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외부에서 자금을 대규모로 빌려 회사를 인수하는 인수합병(M&A) 기법이다.
LBO는 그간 국내 PEF 성장의 근간이었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PEF 입장에선 펀드 조성 당시 약속된 수익률 확보를 위해 LBO를 통한 레버리지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MBK파트너스의 경우 홈플러스 인수뿐만 아니라 고려아연 인수전 등 굵직한 딜을 LBO로 성사시켰다.
당초 금융당국은 홈플러스 사태 당시 차입비율 상한을 순자산 대비 200% 수준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LBO 자체에 대한 규제안을 만지는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현재 주요 운용사를 대상으로 LBO 활용 현황과 인수금융 조달 방식을 조사 중이다. 이찬진 국감원장이 국감에서 밝힌 규제안의 준비 작업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 투자영역 확대 PEF 대체할까
살얼음판을 걷는 PEF 업계와 달리 증권업계는 활황기를 보내고 있다. 증시 호황에 따른 실적 향상과 더불어 발행어음 인가가 올 연내 이뤄질 전망이라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을 경우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최대 200% 수준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발행어음 조달 자금 중 25%를 오는 2028년까지 모험자본에 투입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자금시장에서 PEF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PEF 운영의 기본적인 구조는 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키워 되파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업이 매물로 나오는 이유다.
오스템임플란트와 같이 오너가 경영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 수는 기업의 자금 사정 악화로 인한 매각이다. 이때 발행어음으로 자금여력이 높아진 증권사가 PEF의 역할을 대신해 자금 조달처로 나설 수 있다.
추가 발행어음 인가가 마무리된 후 증권사들이 발행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100조원에 달한다. 당국이 의무로 정한 모험자본 비율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25조원 이상이 모험자본에 투입될 수 있는 셈이다.
당초 업계에선 모험자본 의무 투자영역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증권업계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참여를 비롯한 지분 투자 참여 확대로 이를 극복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발행어음 증권사 투자 영역 확대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한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증권업계 역할 및 성장전략' 세미나 (사진=금융투자협회)
지난 15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증권업계 역할 및 성장전략’ 세미나에선 M&A시장에서의 발행어음 증권사의 역할론이 언급됐다.
윤병운
NH투자증권(005940) 대표는 이날 “성장자본인 모험자본 투자와 함께 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에는 M&A와 구조조정 금융을 통한 사업 재편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며 주식과 채권의 장점을 결합한 메자닌 사모대출(Private Debt·PD)·성장형 사모펀드 등 새로운 투자 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업계에서도 증권사 자금 조달처 역할론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전 부동산 시장에서 사채업체를 증권사들이 대체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재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기업 입장에서 PEF에 보유 기업 지분을 파는 것 보다는 증권사 자금 조달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는 제도적 바탕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향후 모험자본 투자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PEF의 역할을 충분히 증권사들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