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검사·감독권을 두고 갈등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기관이 소비자 보호를 중심에 두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금감원장이 기존 금융감독 제체에 손질이 필요하다고 직격 발언을 내놓으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 강화 등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정권에서 반복돼온 금융당국 내부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특사경 강화 '뜨거운 감자'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 조직 개편이 무산된 이후 기존 금융위-금감원 체제는 현재 유지 상태입니다. 그런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등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에 돌입하면서 과거 검사·감독권 강화를 키우는 것을 두고 두 기관의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사경 권한 확대가 대표적입니다. 이찬진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의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권한을 키우기 위해선 특사경에 인지수사권과 강제조사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인지수사는 고소·고발 조치 없이도 수사기관이 불법 정황을 포착하면 수사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금감원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부서와 별도로 부원장 직속으로 특사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특사경은 서울남부지검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금융당국이 검찰에 넘긴 사건을 검찰이 다시 금감원 특사경에 내려보내면 수사에 착수하는 구조입니다. 금융위 특사경은 인지수사권이 있지만 인력이 5명에 불과하고 한 번도 활용한 사례가 없습니다. 금감원은 45명의 인력을 갖추고 있지만 직접 인지한 사건에 대한 수사 착수가 불가능해 인력 활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원장은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데 있어 금감원만큼 효능감 있는 기관은 없을 것"이라며 "특사경이 인지 권한이 없다는 걸 저는 납득할 수 없다. 금융위 감독규정에서 임의적으로 제한하는 건 생전 처음 봤다"고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금감원이 민간기구라 (안 된다고) 하는데, 건강보험관리공단도 인지 권한이 있다"며 "금융위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선회해 정리해주면 자본시장 투명성을 위해 나름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사경 권한 강화를 두고서는 과거부터 금융위에선 반대하는 기류였습니다. 금융위는 "민간기관(금감원)에 강제수사권을 주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금융위에서는 기존의 권한이 상당 부분 금감원에 넘어가는 것을 불편해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금감원 특사경이 맡고 있는 업무가 현재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의 역할과 엇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정부의 '오천피(코스피5000) 달성' 추진에 자본시장 조사 부서의 주목도가 높아진 상태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사문화됐던 특사경을 부활시킨 장본인이 바로 민주당 정권인데, 이번에도 민주당 의원과 이 원장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도 개편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공정거래 근절이 현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데 어느 기관이 중요한 사건을 맡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금감원장 작심발언 여파 촉각
이찬진 금감원장은 그간 소비자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금융위를 비롯한 정부의 금융산업 진흥 정책 때문이라고 직격하기도 했습니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최근까지 금융위를 비롯한 정부 포지셔닝이 금융산업 진흥 정책을 중심으로 운영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 시스템도 과연 금융소비자 보호에 충실할 수 있냐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현 감독 체계하에서 금융위는 금융산업 정책과 감독 정책을 담당하고 금감원은 감독 집행을 담당해왔습니다. 이재명정부에서는 정부 조직개편 작업에서 금융위의 산업정책 기능을 신설하는 재정경제부에 이관하고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 부분을 분리해 별도 조직을 설립하는 안을 추진했으나 결국 무산됐습니다.
금감원장이 국감장에서 검사·감독권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금융위에 규정 변경뿐만 아니라 인력·예산 증액을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상급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만합니다.
금감원은 금융위 설치법에 따라 금융위 감독·감독 정책 집행 기구로, 법적으로는 독립 기관이 아닌 금융위 산하 위탁기관입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예산과 인력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금융위가 승인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금감원 예산의 대부분은 금융사 분담금으로 조성되지만, 편성·증액 과정에서 금융위가 심사·승인권을 가지는데, 금감원이 인력 확충이나 조직개편을 추진할 때 금융위에 예산·정원 증액을 건의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금융정책 방향을 놓고 양 기관장이 충돌했는데, 이번에도 '불편한 동거'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금융당국 조직개편 이슈로 두 기관의 갈등 구조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며, 조직개편이 무산된 만큼 과거 정책과 감독의 엇박자 구조는 해소되지 못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조직의 존폐 위기까지 겪었던 금융위와 금감원은 존재감을 키우는 데 집중할 텐데 소비자 보호나 건전성 감독을 두고 갈등 구조가 반복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